글을 다 쓰고 나면 처음부터 훑어보며 접속사를 지우는 연습을 한다. ‘그런데’ ‘그래서’ ‘그리고’ ‘따라서’와 같은 말들을 최대한 덜어낸다. 접속사는 문장과 문장 사이의 뉘앙스를 결정해버리기 때문이다. 두 문장의 관계를 섣불리 확정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나는 그 사이의 접속사를 뺀다. 두 문장들의 상호작용을 촘촘하게 설계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지만 어떤 행간은 비워둘수록 더욱 정확해진다. 특히 ‘그러나’와 ‘하지만’처럼 앞에 오는 내용을 역접(逆接)하는 접속사를 남발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서 이런 문장이 있다.
“두 사람은 아침에 서로의 어깨를 안마해주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컵라면 한 개를 가지고 티격태격했다.”
이 경우 나는 ‘그러나’를 빼는 방향으로 문장을 수정한다. 앞 문장과 뒷문장의 내용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상대방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은 마음과 내 몫의 라면을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고 싶은 마음은 공존할 수 있다. 인간은 양가적이고 복잡한 존재다. 모두들 여러 갈래로 동시에 뻗어나가는 욕망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중일 것이다. 나는 아까의 문장을 이렇게 고친다.
“아침에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를 안마해주었고 저녁엔 컵라면 한 개를 가지고 티격태격했다.”
- 이슬아, 접속사 없이 말하는 사랑
매력적인 사람들
위 글은 이슬아 작가님이 신문사에 기고한 칼럼에서 인용한 글이고, 내가 읽어본 것중 가장 매력적이다. 발상의 전환은 물론이고, 접속사라는 일상적인 용어를 본인의 감각대로 조형한 것에 감탄했으며, 작가님만의 색깔을 명확한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했다.
나는 이슬아 작가님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작가님이 글에 자신을 녹여내기까지 겪어왔을 경험과 고민들, 혼란과 갈등을 상상해보면, 감히 보도블록 틈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를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당신에게 끌리네요
매력적인 사람들을 보면, 자연스레 그들에게 끌리게 된다. 그에게 매료되기 시작할 때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마치 '나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라고 물었을 때 답하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끌리는 감정을 설명하기 힘든 이유는 조금이나마 답할 수 있다. 첫째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다가가기에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감정의 원인을 파고들어 말할수록 본질적인 감정에서는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사랑'만으로 표현하기 힘든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하길 좋아하는 나는, 늦은 밤 공상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왜 그들이 매력적인지 헤아려보곤 한다. 나는 매력적인 사람들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내가 가지 못한 길
내가 가지 못한, 혹은 내가 갈 수 없는 길을 가는 사람들은 매력적이다. 쉽게 말하면, 이들은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와 다른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사람, 신들린 연주로 열정을 쏟아붓는 사람, 밑바닥에서 자수성가한 사람, 내가 겪어보지 못한 아르바이트 속에서 삶의 경험을 얻은 사람 등. 척 보기에 멋있고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매력적인 부분들을 발견한다. 나와 달리 그들은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고난을 헤쳐나간다. 나는 나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경하게 된다.
한편으로,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매력은, 나의 열등감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낙서를 즐겨했지만, 그 취미를 인정받는 특기로 키우지는 못했다. 반에서는 달리기 대표 선수였지만, 다른 학교와 대결할 때는 쉬이 패배하곤 했으며, 전국구로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끝내 재능의 벽을 실감했다. 그래서 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들의 재능과 집념이 놀랍기도 하고, 무엇보다 질투하는 대신 인정하는 게 내 정신건강에는 더욱 도움이 되니까!
내가 가고 있는 길
진정으로 내가 더욱 매력적이라고 느낀 사람들은, 내가 가고 있는 길을 먼저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갖추고자 하는 매력을 가진 사람들은 정말 멋지게 느껴진다. 내가 갖추고자 하는 매력은 '기술'로서 매력이 아닌, '사람 그 자체에서 묻어나는' 매력이다.
한 사람의 말과 행동, 표정에서 묻어 나온 섬세함과 밝음, 담담함과 차분함이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과 닮아있다면, 나는 거침없이 빠져들게 된다.
매력포인트
내가 끌리고, 닮고자 하는 매력적인 모습들을 적어본다.
잘 웃는 사람
실소나 냉소를 던지는 사람이 아닌, 미소 짓고 폭소하는 사람은 주변을 밝게 만들어준다. 잘 웃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긍정적이다. 잘 웃는 친구가 곁에 있으면, 나는 우울함에 빠지려다가도 쉽게 탈출하곤 한다. 모두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잘 웃는 사람은 더욱 빛난다. 개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서 더욱 단단해진 사람은 웃음으로 자신을 나타낸다. 이들은 현재의 고통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주변인들에게도 밝음을 전파하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나는 이 매력을 가지고 싶다.
잘 듣는 사람
잘 듣는 사람은 매우 희귀하고 귀하다. 내가 만나본 잘 듣는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수준이다. 잘 듣는다는 것은 깊은 공감과도 관련이 있는데, 잘 듣는 사람이 나에게 보여주는 말과 표정을 보면 무슨 고민이든 얘기하고 싶어 진다. 사회에서 숱한 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리의 눈을 바라봐주는 잘 듣는 사람은 매우 소중하다. 또한 이들은 대화 상대인 우리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이들은 대화의 중심을 자신으로 가져오지 않고 상대에게 집중한다. 이러한 반응과 지지에 우리는 대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느끼게 되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이 매력을 가지고 싶다.
착한 사람
여기서 말하는 '착함'이란 '순진함'과는 다르다. 나는 '전략적으로 착한'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선한 마음으로 남들을 배려하고, 생색내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범위는 단호하게 쳐내며,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먼저 선의를 베푼다. 자신을 스스로 세울 줄 알고, 남도 일으켜줄 수 있는 사람이 '전략적으로 착한'사람이다. 나는 이 매력을 가지고 싶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
스스로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깨뜨리고, 포장이 벗겨진 자신의 밑바닥을 보는 경험을 가져야 한다. 박살난 도자기처럼 괴로운 순간에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인지하고, 흩어진 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자신을 재정립한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관조할 수 있고, 자신의 단점과 장점을 직시하며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안다. 나아가, 자신을 존중하는 만큼 타인을 존중할 줄 알게 된 사람들은 정말로 매력적이다. 나는 이 매력을 가지고 싶다.
흰쌀밥 같은 사람
'흰쌀밥 같은 사람'은 내가 들은 칭찬 중 가장 인상 깊은 표현이다. 어디든 어울린다는 의미의 표현이었는데, 한창 자존감이 떨어진 시기에 큰 위로가 되었던 말이다. 나는 특색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어울릴 수 있는 굉장한 특색을 가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디든 어울린다는 말은 나에게 '무해하다'라는 의미로도 다가왔는데, 내가 추구하는 사람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인상 깊었다. 부드럽게 함께하는 방법을 알고 섬세하게 단어를 선택하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나는 이 매력을 가지고 싶다.
매력적인 나를 기대하며
나는 사람의 인생이 한 점의 수채화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수채 물감은 물에 쉽게 녹는 특성이 있어, 덧칠하게 되었을 때 밑 색과 쉽게 섞이게 된다. 각자가 겪어온 인생은 모두 다르지만, 경험마다 색색의 붓 자국이 캔버스 위에 남아있게 된다. 결국 우리네 인생은 수채화처럼 밑 색과 덧칠된 색이 섞이며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완성된 걸작들을 주변에 잔뜩 두고 싶다. 나아가, 나도 그 걸작과 어울리는 작품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