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질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빛 Feb 26. 2023

<부탁>

질문(質問)


한번 만나서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아니, 만나면 꼭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대에게.


목련존자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았습니까.

빌고 또 빌어 지하세계에 내려갔다 오지  않았습니까.

얘기할 기회, 부탁할 기회

나에게도 기회를 한번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버지어머니의 자궁에서

탯줄로 연결된 그 통로를 타고

내 몸 속으로 온 그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바깥세상과의 싸움 없이,

먹고 먹히는 생사의 험난함 없이,

이세상과 저세상을 힘겹게 넘나드는 고통없이,

좌표를 설정하여 공간을 이동하는 고뇌의 여정없이,

환경도 닮고 식성도 맞고 냄새도 같아 거부감없이,

가장 편하고 아늑한 방법으로 왔으니.

누가 뭐래도 최고의 방법으로 왔으니.

내게도 기회를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들은

순간순간 살아생동하는 젊은 생명체입니다.

늙고 죽음을 기다리는 힘없는 육신이 아닙니다.


미래의 꿈을 얘기하고.

꿈에 젊음을 불사르고.

애틋한 사랑 얘기를 마치 어제 일처럼 하고.

부모가 되어 아이를 낳아 키운 얘기를 하고.

밥 잘 챙겨 먹고 다니냐며 걱정하고.

시를 쓰고 고치며 사랑과 삶을 노래하고.


저 생동하는 생명체가 늙어 사라져야 한다니.

저 생명이 없어져야 한다니.


저 모습은 지금 내 모습 그대로인데.


몸 속 그대여.

꼭 한번 만나 얘기하고 싶습니다.

부탁하고 싶습니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그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