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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 Feb 04. 2024

내 인생 처음으로 아들과 게임을 했습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아들과 게임을 같이 했습니다.

저에겐 인생 일대의 대 사건입니다.


일요일

첫째아이가 혼자 집에 있는 게 이상했습니다.

아이엄마가 직감적으로 탭을 확인해 봤더니

우리가 집을 비운사이

아이가 줄곧 게임을 한 겁니다.


아이엄마가 아이를 추궁했습니다.

아이엄마와 아빠는 아이와 오랜시간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결론은

게임을 몰래한 아이의 잘못도 있지만,

게임을 못 하게 한 아빠의 잘이 더 크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게임이 하고 싶었을까.

학교에서 친구들과 대화 자체가 안 되었을 텐데.

남자아이는 대화의 전부가 게임 이야기였을 텐데.

아빠가 게임을 전혀 안 하니, 하고 싶어도 하고 싶단 말도 못하고

아빠를 마음 아프게 안 하려고, 게임을 하고 싶어도 하고 싶다고 말도 못하고.

그래서 몰래 했던 그 불안하고 도둑질하는 것 같은 그 심정... 얼마나 참담했을까.


수요일 낮

아빠는 회사에서 생각했습니다.

집에 가면 아이와 게임을 해야지 다짐을 했습니다.


수요일

엄마가 야간근무하는 날.

밥을 먹이고

수학공부를 시키고

설거지와 빨래를 빨리 돌리고

아빠는...

탭을 켰습니다.


아이에게 게임 할래? 했더니

고개를 저읍니다.

오히려 그 모습을 보던 동생이

오빠 게임 해~ 라고 거듭니다.

동생도 오빠가 딱했나 봅니다.


아이가 먼저 하길 주저하고 있습니다.

아빠의 눈치를 보는 것일 겁니다.

선뜻 한다고 했다가 욕 먹을 까 봐.. 서일 겁니다.

압니다.


그래서 아빠는 솔선수범해 탭을 켜고 브롤을 깐 후 게임 앱을 켭니다.

1단계를 이리저리 해 봅니다.

아빠 혼자 중얼거립니다.

"아이고, 왜 이렇게 안 되지? 어..어... 이거 조작이 왜 이렇게 안 되지? 얼마전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이거 해 봤는데... 그때도 금방 죽더니, 오늘도 금방 죽네... 왜 이러지? 00야,~  빨리 와봐. 이리 와서 이거 좀 도와주라~.여기 여기서 어떻게 하는 지 모르겠다. 이거 조작하는 법 좀 가르쳐 주라~ "


그랬더니,

첨에는 아이가 외면하고 모른 척 합니다.

아빠는 계속 능청스럽게 모르겠다고... 도와달라... 이리 와 봐~ 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못 이기는 척 쓰윽 옵니다.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짓는 듯 하더니...

"아빠~ 이건 이렇게 하는 거예요~. 이땐 이렇게 해요~ 이건 이렇게 좌우로 하고요..."

"00야~ 네가 한 판 해 봐 주라. 아빠는 이케 금방 죽는다. 네가 하는 모습을 보면 아빠가 알 수 있을 지 모르잖니. 한번 해 봐 주라."


아이가 못 이기는 척 하며 게임 한 판을 합니다.


태어나서 내 아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잘 합니다.


분명 제법 해 본 솜씨입니다.

부모 몰래 여러 번 해 봐서 실력이 어느새 늘어버린 것일 수도 있고.

아빠엄마인 어른에 비해 배우는 속도가 빨라 짧은 시간에 실력이 는 것일 수도 있고.

세상의 모든 아이는 다 머리가 좋아서 실력이 는 것일 겝니다.


몰래 하느라 얼마나 마음 졸이며 불안하게 이 게임을 했을까.

남들은 다 당연하게 게임을 하고,학교서 자랑도 하고, 게임얘기를 주고 받는데,

이 놈은 대화속에 끼지도 못하고 단절되고 소외되고...

얼마나 게임이 하고 싶었을까.

얼마나 아빠를 원망했을까.


게임하는 아들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처음 봅니다.

잘 합니다.

아빠는 금방 죽는데,

아이는 몇 초 만에 1, 2 단계 통과를 합니다.

주인공과 무기를 바꿔 가며 잘 합니다.


이 주인공은 이런 특징이 있고,

이 주인공은 주로 이런 무기를 쓰고 주로 가까이서 쏘고

저 주인공은 주로 저런 무기를 쓰고 주로 멀리서 쏘고...

설명을 청산유수로 쉽게 합니다.


손 놀림이 심플하고 빠릅니다.

군더더기가 없다.

총도 아빠처럼 마구마구 쏘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다가 상황을 봐서 적절하게 쏩니다.

좌우 몸놀림도 부산하지 않습니다.

블럭의 코너링도 부드럽습니다.

여기저기 왓다갔다 하지 않습니다.

적이 오는 것을 다른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준비 태세도 잘 합니다.


아이가 잘 하는 것일까.

이 아빠가 못 하는 것일까.

이 아빠가 못 하는 것일 겝니다.


아들이 아빠보고 이렇게 해 보라고 건네 줍니다.

아빠가 다시 해 봅니다.

아이가 할 때와 다릅니다.


아빤 몸놀림이 정신이 없고 부산합니다.

총도 쓸데없이 마구 쏘아댑니다.

정작 적이 왔을 때엔 적절히 쏘지 못합니다.

빗나가기 일숩니다.


그 모습을 보던 아이가 싱긋이 웃습니다.

아빠가 금방 죽었습니다.

"00야, 너는 금방 통과하는데 아빠는 왜 이케 금방 죽냐?" 아빠기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자기보다 못 하는 아빠의 모습에 기분이 좋은지 싱긋 웃습니다.


아이의 싱긋 웃는 모습을 넌지시 봅니다. 슬쩍.

좀 더 환하게, 밝게, 크게 웃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매번 싱긋 웃습니다.

내가 유머있게 키우지 못한 잘못일까.

내가 평소에 크게 웃지 않은 탓일까.

내가 환하게 웃지 않은 탓일까.

그 기운이 아이에게 전달 돼 교육이 돼 버린 탓일까.

아이가 기분이 좋아도 환하게 웃지 않습니다.

그져 싱긋이 웃습니다.


그 모습에 아빠의 마음은 아픕니다.

화가 났다가도 그 아픈 마음에 속이 쓰려옵니다.

몰래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밝게 크지 못한 아이의 모습...

아빠가 너무 책을 읽어라,

게임하지 마라,

유투브 조금만 봐라,

핸드폰 오래 보지 마라,

너무 간섭하고 제지하고 ...

그래서 일까.


내 인생 처음으로

아들과 게임을 했습니다.

동생이 옆에서 응원을 해 주며.


나는 게임을 하지 않습니다.

특이한 남자이며

특이한 아빠입니다.

재미없는 아빠입니다.

어떤 직원은 꿈이 아들이 크면 아들과 게임을 같이 하는 거랍니다.

나는 그때 그걸 이해하지 못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걸 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00야, 아빠가 옛날 사람이라서... 미안해. 그래서, 아빠가 게임을 몰라. 많이 힘들고 섭섭했지? 그건 실은 아빠가 잘 몰라서 그랬어, 미안해. 아빠가 게임을 안 해 봐서, 게임이 무조건 안 좋다고 생각한 거 같아. 앞으로 00야, 아빠가 모르는 게 잇으면 아빠한테 얘기해 주라. 아빠, 학교 친구들은 머 머를 해요, 나도 해 보고 싶어요. 아빠가 몰라서 그러는데요. 애들은 이런 거 이런 거 해요. 라고 아빠한테 얘기해 주라. 아빠가 모르는 게 있을 수 있잖아. 00야, 아빠가 몰라서 그렇지,  알면 막 못 하게 하고 그러지 않잖니... 그치? 아빠도 알려고 하고 배우려고 할 게. 아빠도 게임 배워서 할 게."


아이가 눈물을 흘립니다.

그동안 설움과 답답함이 눈물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아빠의 가슴 속에서도 눈물이 흘러 고입니다.


얼마나 어빠가 원망스러웠을까.

얼마나 자기 자신이 답답했을까.

교실에서 대화의 단절.

친구를 사귀고 싶은 데 모두 게임 얘기였을 텐데.


아빠는 그 시절

공부만 하느라 남자애들 세계의 얘기를 몰랐기에

가능했던... 것.


난생 처음

아이와

아들과

게임을 했습니다.


이 날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끝.


2023.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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