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활짝 피었다. 벚꽃이 유명하다는 거리에 사람들이 한창 붐비는 것을 보니 다시 봄이 왔다는 것을 확연히 느끼게 된다.
나는 이맘때쯤에 태어났다. 어느 해에는 날씨도 좋고 벚꽃이 한창 핀 서울숲을 거닐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이 생일이었다.
날이 좋다고 생각해 보니 이런 날에 나를 낳은 엄마에게 새삼 고마워졌었다.
봄에 태어난 사람들을 봄을 좋아할까? 봄에 태어났으니 봄을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나는 올해 들어 꽃이 핀 모습을 보고 마흔이 넘게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태니컬아트를 더 이상 하지 않는 지금 꽃을 보며 나는 봄을 싫어하고 있었다.
착각이 깨지기 시작했던 것은 보태니컬아트를 하면서였다. 보태니컬아트는 식물을 그려야 하는데, 특히 아름다운 꽃을 많이 그리게 된다. 몸은 꽃을 그리고 있지만 나는 과연 꽃을 좋아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보태니컬아트를 하는 내내 했던 것 같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이 되면 꽃을 찍을 작정을 하고 꽃이 피는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꽃은 보면 아, 예쁘다는 소리는 나오지만 그 이상의 감동은 없었다.
나는 선물로 꽃을 받는 것도 싫어했다. 전시회를 하게 되면 보통은 꽃을 선물로 많이 받게 되는데, 받을 때는 예쁘고 좋지만 문제는 시들고 난 다음이다. 난 남의 전시장에 꽃 선물이 가득 온 걸 봐도, ‘에휴, 저거 나중에 다 시들면 버리기 귀찮아서 어쩌나’라는 생각뿐이었다. 꽃은 시들고 난 후 나에게는 그저 처리하기 귀찮은 쓰레기였다.
나에게 봄에 대한 기억은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었다. 우리나라는 늘 새 학기가 봄인 3월에 시작하기 때문에 늘 봄에는 어딘가 새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곤 했다. 특히 지방에서 19년을 살다가 서울로 대학을 온 나는 1학년의 봄을 홀로 새 환경에서 매우 외로웠다. 가족을 떠나 홀로 서울에 있기도 했고, 봄은 생각보다 춥다. 그래서 추위에 덜덜 떨면서 새 친구를 사귀기 위해 노력했던 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밟힌다. 일본에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도 3월이었다. 새 환경에 아르바이트자리를 알아보고 새 사람들을 만나야 했던 그 기억도 치열하고 쓸쓸했다. 아르바이트로 번 첫 월급을 도둑 맞고 해외에서 만난 한국인을 더 믿을 수 없게 만든 경험도 그때의 봄이었다. 봄은 그렇게 나에게 쓰디쓴 계절로 느껴지는 이유인 것 같다. 그때의 그 느낌, 봄의 기운에 느꼈던 그 느낌, 그래서 봄기운이 도래하면 그때의 외로움과 불안이 밀려오는 것 같다.
이유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봄이 되어 피는 꽃들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아름답게 핀 꽃을 감상하며 기분이 들떠있다. 꽃을 보면 예쁘다는 걸 알면서도 감상하지 못하는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지금에서 유추해 보게 된 이유는 한 가지였다. 꽃은 아름답게 피어있지만, 나는 피어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꽃을 감상할 만큼 내 인생에 예쁘게 피었던 적이 있었을까? 피어있는 꽃과 내 인생이 대조되면서 나에게 묘한 패배감을 안겨준 것 같다. 내 자존감이 무척 부족했던 어렸던 시기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름답게 피어난 꽃만큼 내 인생은 아름답게 피어난 적이 없고, 계속 겨울의 앙상한 가지만 남겨진 지 오래였다.
언제부터 난 봄을 즐기지 못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난 쓸쓸했을까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나의 외로움은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과 후로 나뉜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 가족은 또 고군분투했다. 겉으로 보는 모습은 일상으로 가고 있었지만 마음에는 이미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상태로 메워지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를 통해 아는 어른이 나에게 백화점에서 좋은 옷을 사주는 장면이 떠오른다. 백화점에서 옷을 고르고 있으면 설레거나 떨리는 좋은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 인상 깊게 남은 감정은 내가 입고 싶었던 청자켓을 고르면서도 쓸쓸했던 감정 밖에 없었다. 아직도 그 장면은 나에게 낮은 자존감의 사춘기 소녀의 쓸쓸함만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봄을 대하는 나의 감정은 어땠을까?
초등학교 2학년의 나의 생일이었다. 나의 생일에는 항상 봄비가 내리거나 벚꽃이 만개한 두 가지 장면 밖에 없지만 그날은 봄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그 당시 꽤 인싸였던 나는 생일파티 대신 학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친구들에게 거하게 쏘고 있었다. 그 장면에서는 외로움을 느끼는 나의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사고 전의 봄과 사고 후의 봄을 비교해 보자면, 내가 봄을 즐기지 못하고, 화려하게 피어있는 꽃들을 질투하며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아빠의 존재 여부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의 구멍은 한 번 생겨버리면 메워지지도 않고 바람이 휭휭 들어와 시리고 아프게 만든다. 평범한 꽃놀이조차 제대로 감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마음의 공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