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이야기] ‘나는 생존자다’를 보고

눈물을 흘리던 날 밤의 다짐

by 유행에민감한여자

내가 내 이야기를 그림에 담아서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얼마 전부터였다. 3년쯤 되니 힐링이었던 그림에 전문성이 붙기 시작하면서 다른 동기를 찾아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는 좀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아빠가 어렸을 때에 돌아가셨고, 그 슬픔은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에도 나에게 큰 상처고 끝낼 수 없는 애도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아빠 돌아가신 걸로 이렇게나 오래, 크게 슬퍼하나 하고 의문을 품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아빠는 93년 10월 당시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해훼리호에 탑승하고 계셨다. 텔레비전만 틀면 뉴스에서 계속해서 특집 보도가 흘러나오고, 엄마는 아빠를 찾아 사고현장으로 떠났다. 집에 친척 손에 맡겨졌던 나에겐 그때의 상황들이 이제는 덤덤하게 넘길 수 있는 경험은 아니었던 것이다. 후유증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만 10세의 어린 소녀에게는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한참을 키워도 낫지 않는 흉터가 되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며 우울증을 치료한다고 해도 그때의 트라우마가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내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고 생각한 이후부터 그때의 일들은 나에게 더 선명하게 다가왔고, 이전보다 더 사무치게 슬픔이 되었다. 마치 내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 같았다.


그 무렵, 어떤 영화도, 어떤 책도, 어떤 드라마도, 어떤 TV쇼도 재미가 없던 나는 태블릿을 열어 볼 것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갑자기 넷플릭스를 열어 ‘나는 생존자다’를 열고 목록을 보고 있었다. 가장 아래 목록에서 삼풍사고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있는 것을 보고서는 뭐에 홀린 듯이 선택해서 재생하고 있었다. 생존자들과 유가족들, 구조자들의 인터뷰 내용들이 나오고,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사고의 자세한 사실들을 볼 수 있었다. 보는 내내 나는 눈물을 훔치고, 밖에서 내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은 남편은 ‘야, 너 그거 보지 마! 왜 네 트라우마를 네가 자꾸 들춰보고 있어! “라고 외쳤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내 상처를 마주해야지만 감정을 흘려보낼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지만, 남편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실컷 울고 난 밤, 누워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내 이야기를 그림에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에 더 용기가 생겼다. 이제는 나는 이것을 해야만 했다.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알려야겠다. 이런 참사를 겪은 사람들 중 비교적 오랜 시간이 지난 나도 이렇게 아직도 아프다고. 이런 일은 그냥 한 때 특집보도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는 평생에 걸쳐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라고.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고. 이런 사고는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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