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그냥 고양이다.

고양이 후추 구조 이야기

by 홍홍

동네 사람들은 밤새 고양이 한 마리가 사라진 것을 눈치챘을까? 나는 밤새 사라진 고양이를 데리고 온 사람이다. 아직 이름은 없지만 아이의 털모양은 고등어이다. 그런데 다른 고등어와 달리 무늬가 검은색이다. 검정 고등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후추라고 부르기로 한다. 밥을 챙겨 주던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이다.


내가 후추를 처음 알아차린 것은 2월쯤이다. 동네 폐가 근처에 고양이들이 거주하는데 겨울을 잘 났는지 궁금했던 나는 어디 나갈 일이 있으면 꼭 그 집 앞을 지나다녔다. 그날은 후추가 울타리로 걸어 들어가던 엉덩이만 보게 되었다. 아! 어린 고양이가 겨울을 났구나. 그 후로 눈에 띄지 않던 녀석은 성큼 자란 모습으로 동네 어귀에 있는 헌 옷 재활용함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었다. 녀석 옆에는 햇반 그릇에 사료와 물이 담겨 있었고, 처음 보는 나에게도 한껏 야옹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늘 그렇듯 갈 길이 있던 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길을 돌리곤 했다. 어느 비 오는 날에는 주택가에 들어온 암자가 고맙게도 대문을 열어 놓아 그 밑에서 비를 피하며 또 야옹거렸다.


어느 날은 아이의 밥자리는 주차되어 있는 커다란 탑차 옆 담벼락이고 어떤 날은 자동차 밑이었다. 나도 맛있는 사료를 종이컵에 넣어 담벼락 옆에 두어봤지만,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 사료를 먹지 않아서 다음 날 수거하기도 했다. 그렇게 후추는 동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작은 골목, 그 주택가 사람들이 주차해 놓은 틈에서 점점 자랐다.


그러다 동네 주도로가 공사를 시작했다. 4월 20일부터 5월 20일까지. 3차선 도로에서 두 차선이나 막아 놓고 하수도 공사를 하는 것이었다. 출퇴근 시간에 차가 간신히 흐름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곳 지리에 밝은 사람은 우회로를 이용하는데, 하필 그 길이 후추가 거주하는 곳이다. 사실 나도 우회로를 이용하고 있지만 늘 고양이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후추가 나에게 어필하던 순간부터 이 아이를 구조해서 입양을 추진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길로 차가 많이 다니면서부터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다니는 차가 많아서인지, 영역싸움에서 밀린 것인지 후추는 우리 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겼다. 어느 날은 바로 우리 집 앞까지 와서 물과 사료를 회양목 아래 감춰두곤 했다. 금방 잡힐 것 같던 후추는 이때도 잡히지 않았다. 고양이 구조 베테랑인 만랩어머니가 조언해 주신 대로 뒷다리를 잡았으나 한쪽만 잡히고, 녀석의 힘이 좋은 바람에 그만 놓아주고 말았다. 그 후로 후추는 엄마로 추정되는 삼색이와 자주 보였고, 동네 교회 앞, 우리 아파트 후문에서 많은 사람들의 보살핌으로 안전하게 살았다. 아, 너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연휴를 이용해 태국에 가 있는 사이 만랩어머니가 전화하셨다. 통화료 무서워서 통화는 못 하고 한국 와서 연락했다. 전화하신 이유는 바로 후추였다. 근처 유치원, 우리 아파트에서 조금 내려간 곳에서 집에서 나온 듯한 고양이를 보게 되어 당근에 고양이 잃어버린 사람을 찾는 공고를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 거주자가 우리 아파트 근방에 사는 고양이라고 알려주셨다고 했다. 그제야 그 고양이가 몇 달 전 나랑 잡으려고 했던 후추임을 깨닫고 급히 나에게 전화하신 거였다. 사실 후추 구조를 슬슬 포기하던 차에 이 연락은 구조를 다시 시작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사람 손을 너무 타서 배를 보여주고 눕기까지 한다니,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사실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한국에 와서는 저녁마다 후추를 찾아보았다. 구조를 염두에 두고 케이지를 들고나가서 좋아하는 간식도 주고, 케이지에 익숙해지게 했다.


후추는 이미 동네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다. 지나가는 아이들, 엄마, 아빠가 모두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 후추는 한 번도 해코지를 받아보지 않았기에 남녀노소 모두에게 머리 만지는 것을 허락했다. 심지어 내 케이지에 몸이 반이나 들어오곤 했다. 나는 속으로 감동받았다. 우리 동네분들이 정말 애정으로 이 아이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케이지를 갖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보며 데려가실 거냐고 많이들 물어보셨다. "네, 데려가서 수술시키고, 입양 보내려고요."


이미 고양이 세 마리가 있는 우리 집에서 새로운 고양이를 임시 보호할 공간은 없었다. 하지만 마침 막내가 스웨덴으로 짧은 유학을 하러 가기에 막내방을 염두에 두고 구조를 추진했다. 디데이는 막내 출국일.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는 11시에 출발했고, 요즘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회를 하여 14시간이나 비행을 한단다. 아직 우리 아이가 하늘을 날고 있는 사이, 별일 없겠지만 마음은 편치 않은 엄마는, 후추 구조를 감행했다. 혼자서 못할 것을 알기에 만랩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밤 10시에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시던 만랩어머니는 흔쾌히 달려와 주셨고, 구조한다는 내가 준비한 케이지와 수건으로는 턱없다는 것을 간파하셨다. 즉시 아는 조카에게 전화하여 전문 구조틀과 꽁치 통조림을 준비해 오셨다. 처음으로 보는 구조틀. 안쪽에 꽁치 통조림을 조금 넣어두고 후추가 들어오기를 기대한다. 사실 나의 마음은 반반이었다. 우유부단한 나. 후추가 잡히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후추가 안 잡혀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한다. 이렇게 도움까지 요청하고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 스스로도 헷갈린다.


머리 좋은 후추는 뒷발은 밖에 두고 꽁치 냄새를 확인하고는 곧 나왔다. 즉, 구조틀은 실패다. 아쉬움 반 다행이라는 안도 반. 만랩어머니는 포기란 없다는 각오로 집에 가셔서 담요를 가져오셨다. 바닥에 누워있던 후추 위로 넓은 담요를 펼치고는 바로 안아 올리셨다. 담요를 이리저리 여미시고는 바로 우리 집으로 달렸다. 숨 막히지 않아야 하지만, 용쓰다가 도망가지 않을 정도로 잡으시고는 냅다 집으로 달린다.


집 앞에 다달았다. 이제 내가 건네받고 들어갈 것인가? 같이 들어갈 것인가? 집은 무방비 상태이고, 방문객을 맞이하기엔 어수선했다. 요즘 새벽마다 달리기 하는 우리 고양이 두 마리 때문에 새벽잠을 설친 남편. 그냥 동네고양이 살펴본다고 나간 내가 고양이를 데려왔으니 남편은 뭐라고 할까? 만랩어머니는 직접 집에 들어와서 풀어주시는 방법을 선택하셨다. 원래 계획은 오늘부터 비어있는 막내 방에 두는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 세 마리도 모자라서 한 마리 더 데려온 나를 보고 화를 참지 못한 남편은 나를 책망하고는 자기가 막내방을 쓸 거라며 들어가 버렸다. 아, 이게 아닌데. 그럼 후추는 어디로 가지? 할 수 없이 아이들 화장실로 쓰고 있는 베란다로 향했다.


43평 집의 긴 베란다를, 나는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문을 두 개나 달아서 3개로 나누어 놓았다. 큰아들 방 앞의 베란다를 빠르게 검토해 본다. 큰애는 고양이를 아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곳은 통창이라 햇빛이 바로 들어온다. 지금 낮기온이 37도가 되는데 오후에 해가 집중적으로 드는 서향집에서 고양이를 이곳에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고양이 화장실로 쓰는 베란다로 골랐다. 여기는 벽이 있고, 중간 크기의 창들이 있어 직사광선을 막아준다. 그리고 안방과 연해 있으니 후추가 밤에 울더라도 내가 감수하면 되는 것이다. 모래가 들어있어 무거운 고양이 화장실을 세 개나 거실로 꺼냈다. 화장실을 치운 자리엔 흘러나온 모래가 잔뜩이고, 원래 아이들이 흘린 모래와 합쳐서 만랩어머니 보기 낯 뜨거웠다. 풀려난 후추는 너무 당황하여 숨을 크게 쉰다. 후추야, 미안하다. 이게 더 좋은 삶일 거야. 애써 위로해 본다.


후추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누워서 그동안의 일을 회상해 본다. 후추 옆에 있는 동안 길고양이라는 표현을 많이 들었다.

"얘 길고양이예요?"

"길고양이가 왜 여기 있지?"

개와 달리 고양이는 인간 가족이 있으면 집에만 사는데, 몰라서 그러는 건가, 왜 굳이 길고양이라고 부를까.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다. 고양이가 길고양이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했을까? 길고양이라는 호칭에 고양이의 자존감과 지구 시민의 권리는 사라져 버린다. 모든 단어는 그 범위를 가지고 있다. 길고양이라는 호칭에는 어떤 내용이 내포되어 있을까. 주인 없는 고양이, 주인이 없으니 함부로 해도 되는 대상, 저리 가라고 소리 질러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동물, 갈 곳 없는 고양이, 쓰레기를 뒤지거나 밥을 챙겨줘야 할 대상, 언제 어떻게 되더라도 아무도 모를 상관없는 존재, 만지면 병균이 옮을 것 같은 더러운 짐승. 이렇게 길고양이라는 단어에는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가 확장되어 있고, 당당한 한 생명체로써의 의미는 축소되어 있다. 그저 인간이 사는데 보이는 존재, 없어졌으면 좋을 존재, 가다가 눈에 보이면 있는가 보다 하는 존재이다.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다. 길고양이 말고, 그냥 고양이라고 불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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