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살아갈 힘이 될 때
수전 티베르기앵은 삶이란 어느 한 사람이 살아온 과정이 아니고, 그 사람이 기억하는 내용, 그리고 그 기억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 속 장면이 많지만 멈추어 깊이 생각해보기는 어려웠다. 내 나이 쉰이 넘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의 세 자녀가 모두 성인이 되니 이제는 천천히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먹고, 멈추어 생각해본다. 나의 삶을 구성하는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일까?
내 기억이 시작하는 곳은 내가 태어난 집이다. 풍채 좋은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채와 바깥채가 미음자를 이루는 아늑한 기와집이다. 집을 생각하면 항상 마당에 가득 쏟아지던 햇빛이 생각난다. 집에 들어서면 오른쪽은 외양간인데 소가 볏짚을 씹고 있다. 왼쪽을 보면 사랑방에 불을 때는 커다란 아궁이다. 아궁이엔 가마솥이 하나 걸려있었는데 물을 끓이거나 소죽을 쑤며 난방도 하고 소에게도 온기도 나눠주었다. 허연 김을 뿜던 솥, 부지깽이로 쓰던 잔가지에 불이 붙으면 담배라며 어른 흉내 내던 코흘리개 조카, 내가 들어오면 미소로 반기던 아버지의 얼굴이 스쳐 간다. 외양간 옆은 창고, 또 그 옆은 새로 꾸민 예쁜 방이다. 그 방은 이름은 없었지만, 손님이 오면 썼다. 나는 그 방을 무척이나 원했지만, 바깥채에 딸을 재울 수 없다는 아버지의 고집으로 끝내 내 방이 되지 못했다.
대문에서 안마당을 가로지르면 안채이다. 안채의 중심은 대청마루이다.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왼쪽은 안방, 오른쪽은 건넌방이다. 넓은 대청마루엔 뒤창이 있는데, 거의 닫혀있었지만 창호지 바른 뒤창은 시골집에 어울리지 않는 운치가 있었다. 양옆에는 뒤주와 키가 큰 고동색 나무 장이 있어 마치 뒤창을 지키는 시녀 같았다. 바로, 이 대청마루에 내 최초의 기억이 있다.
조명 속 연극 주인공처럼, 햇빛이 부드럽게 감싸는 대청마루 위에 엄마와 내가 있다. 나는 잘 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엄마가 다짜고짜 나를 엎드리게 만드시더니 바지를 내리셨다. 몇 살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바닥에 앉은 엄마의 다리에 내 몸이 딱 맞았던 것 같으니 세 살이나 네 살이지 않을까. 얼마 전까지는 엄마가 볼기짝을 때리셨던 거로 생각했는데, 천천히 곱씹으니 다른 목적을 갖고 계셨던 것 같다. 어찌 되었든 그때 꽤 놀랬는지 수십 년간 이 장면이 잊히질 않았다.
엄마가 왜 그러셨을까? 몇십 년간 품고 살아온 질문이다. 내가 엄마가 되어 그때의 나만큼 작은 아이 셋을 키우며 늘 이 장면을 생각했다. 내 나이 쉰이 넘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아하!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엄마는 내 볼기짝을 때리신 게 아니라 내 몸에 무슨 일이 있어서 검사하신 것이다! 그때 엄마가 화를 내지 않으셨고, 내가 운 기억도 없다. 그저 노는데 갑자기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어린 내겐 큰일이었다. 아마 바지에서 냄새가 났거나 오줌을 쌌던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나이 쉰이 넘고, 또 그 중반에 다다르니 자녀교육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고 내 삶에 열중해도 되게 되었다. 이제는 더 천천히 내 기억을 매만진다. 그동안은 이 기억이 엄마가 볼기짝을 때리셨던 것이었는데 쉰이 넘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더욱, 그때의 엄마가 사랑으로 나를 돌보셨던 따뜻한 기억으로 떠올라지는 것이다. 내 나이에 엄마는 늦동이인 내가 아직도 초등학생이다. 많은 나이에도 육아에 최선을 다해주신 엄마 생각에 눈시울도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