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2_누룽지와 꼬마

by 홍홍

오랜만에 만난 언니들과 해물이 소복하게 담긴 누룽지탕을 한 그릇씩 앞에 두고 앉았다. 펄펄 끓는 돌솥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열과 향기가 반가운 분위기를 감쌌다. 누룽지탕의 열기가 얼굴에 닿으니 엄마가 밥솥을 열 때 올라오던 열기가 생각났다. 밥솥을 긁어 동그랗게 뭉쳐주시던 누룽지. 서리 내린 길을 따라 따뜻한 누룽지를 쥐고 학교 가던 어린 꼬마가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80년대 시골집에 가을이 오면 엄마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지으셨다. 밥솥으로 쓰는 무쇠솥은 반질반질하게 윤이 흘렀다. 안방과 연해 있던 부엌은 난방의 공간이자 조리의 공간이었다. 가을로 접어들면 방도 데울 겸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하셨다. 부뚜막까지 열기도 데워지면 비로소 부엌에 훈기가 돌았다.

우리 집 무쇠솥은 바닥이 완만하여 밥을 조금만 짓더라도 바닥에 꽤 넓게 눌어붙었다. 밥이 타면 딱딱하고 검은 누룽지, 고슬고슬한 밥이 될 때는 희고 보드라운 누룽지, 콩밥을 하면 콩 누룽지가 나왔다. 엄마는 눌어붙는 밥의 양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셨던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밥을 다 긁어 푸고 나서 물을 부어 두면 남아 있던 열기에 물이 끓으며 숭늉과 눌은밥이라는 새로운 메뉴 두 가지가 더 나왔기 때문이다.


어느 날 조카엄마가 해주신 색다른 눌은밥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맛을 선물했다. 조카엄마라는 별칭은 내가 만들었다. 신조어를 만든 사정은 이랬다. 많은 시골 마을이 그렇듯이 우리 동네에는 한씨 성을 가진 친척들이 많았고, 혼례를 통해 맺은 성이 다른 친척들도 많았다. 엄마가 이분은 누구의 누구라고 소개해주시면 그 관계가 너무 복잡하여 어질어질했다. 그 와중에 촌수가 높았던 내게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조카’였고, 그분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언니, 오빠’였다. 역으로 내 또래 언니, 오빠가 ‘손자’들이었으니 어린 나는 누구를 불러볼 엄두도 못 내고 입을 틀어막고 살았다.


이런 집성촌 가까운 마을에서 조카 엄마는 우리 아랫집에 사시는 할머니셨다. 고작 몇 살밖에 안 된 꼬마가 할머니를 ‘언니’라고 부를 수 없어 아쉬운 대로 호칭을 정한 것이 ‘조카 엄마’이다. 조카 엄마는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많으셨지만 우리 엄마를 ‘아줌니’라고 부르셨고, 우리 엄마도 ‘조카님’이라고 존칭하며 많은 일을 함께하셨다.


어느 날은 엄마가 안 계셔서 조카 엄마가 내 저녁밥을 해주셨다. 가마솥에서 먼저 따뜻한 흰밥을 퍼서 상을 차려 주셨다. 내가 밥 먹는 동안 솥에 단단히 붙어 있던 누룽지에 물을 붓고 붇지도 않은 누룽지를 쇠주걱으로 힘들여서 긁기 시작하셨다. ‘득!득!득!득!’ 규칙적인 소리가 났다. 우리 엄마라면 물 붓고 그냥 두어서 저절로 불 때까지 두실 텐데 힘들게 솥을 긁으셨다. 한참 쇳소리가 나더니 하얀 사기그릇에 희고 보드라운 누룽지가 담겨 나왔다. 마치 흰 쌀로 새로 쑨 죽처럼 고이는 물이 없이 젖은 밥알이 잘게 잘라져 희다 못해 푸른 빛마저 감돌았다. 무쇠솥에 달라붙어 있다가 억지로 끌려 나온 이 음식에서 쇳내와 탄 곡물의 냄새도 살짝 감돌았다. 부드럽고 맛도 고소했다. 바쁜 어른들 사이에 자라며 어른 음식을 먹고 있던 나에게 어린 꼬마가 먹기 좋은 음식을 만들어 주셨던 것이다.


십대가 되어 공부하느라 대처로 나간 뒤에도 가끔 조카 엄마를 뵈었다. 내 나이 스물여섯에 돌아가셨는데 임종 전까지 곁을 지켰다. 내가 인사를 하고 일어서고 난 뒤 숨을 거두셨다. 조금만 더 곁에 머물 걸 하는 후회가 아직도 밀려온다.


언니들과 바닥까지 긁으며 누룽지탕을 다 먹었다. 어린 그날, 난 오늘처럼 배가 불렀을까. 나를 위해 새로 지은 밥과 촉촉한 눌은밥에 호사했던 그 밤을 그려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을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날도 쌀쌀해지는 가을이었는데... 조카엄마와 단둘이 있던 마루 풍경이 밤하늘에 새겨진다. 검은 하늘 가을 별을 가마솥 누룽지처럼 조카엄마가 긁어주실 것만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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