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7월의 여름은 내가 첫아이를 낳고 몸조리하던 시절이다. 학교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취업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며 비로소 내 삶에 쉼표를 찍었다. 물론 살아보니 쉼표가 아니라 고단한 엄마 생활의 시작점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쉼 없이 달려온 내 삶에 찾아온 한 달간의 휴식, 세상 소중한 아기와의 첫 만남, 그리고 잊고 있던 우리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도 함께였다. 왜 그동안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는 잊고 살았던걸까?
출산 후 몸은 점점 회복되고, 엄마 품에서 자고 먹고, 애기 먹이고 씻기기를 반복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때 유독 풀벌레 소리가 정겨웠다. 우리 집은 수원 외곽의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녹색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에 작은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위로 곧게 자라는 가문비나무 몇 그루와 해마다 흐드러지며 세를 넓히던 라일락, 큰 나무 밑에서 둥그렇게 자라던 작은 관목들이이 정겹게 자라고 있었다. 마당 한끝엔 엄마가 관리하시던 수많은 화분이 놓여있어서 상추, 쑥갓, 비름나물 등의 채소가 여리여리하게 자랐다. 그 왼편으로는 크고 작은 항아리가 거실 창문밑으로 일렬로 놓여있었는데 고양이들이 햇볕을 쬐느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다. 그러고 보니 그때부터 우리는 고양이와 인연이 있었나 보다. 나는 다시 직장에 나가느라 본 적이 없지만 나중에 꼬마가 된 우리 큰아들이 항아리마다 앉은 고양이를 보고, 와! 우리 할머니 부자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렇게 식물이 많아서인지 밤이면 밤마다 풀벌레의 향연이 이어졌다. 여치와 쓰르라미, 그리고 모습도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벌레. 달빛이 비치는 서향의 창가엔 더 많은 노랫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털로 가득 덮인 동그란 얼굴의 우리 아들과 모기장 속에서 안전하고 마음 편히 풀벌레 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또 있을까 싶었다. 엄마는 혼자가 좋다며 거실 소파에 누워서 얕게 코를 고신다. 칠순이 넘어 막내딸 산바라지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실까. 그래도 힘든 줄 모르고 기쁘게 도와주시던 엄마가 그때부터 다정하게 느껴졌다.
내가 기억을 할 수 있는 나이엔 큰 추억은 없지만 나 열 살 무렵에는 엄마가 폐경기를 맞으셨는지 무척이나 무서웠다. 생전 처음 듣는 물건의 이름을 말씀하시며(기억에 솥종구래기였다) 가져오라고 하는데 너무나 무서워서 다시 한번 그게 뭔지 묻지도 못하고 아무거나 가져갔던 기억이 있다. 그랬더니 바가지 몰라? 하시며 또 한 번 호되게 혼내셨다. 그제야 바가지를 갖다 드렸던 기억이 있다. 그날이 내 어린 시절 가장 무서웠던 날이다. 또 그 무렵에 콩나물을 직접 기르셨는데 일하러 나가시면서 콩나물에 물 주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나도 놀이에 정신팔리는 부류는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놀다가 깜빡했다. 나중에 집에 오신 엄마가 물을 안줘서 삼태불이가 났다며 또 혼내셨다. 그때는 갓 시집온 둘째 올케가 잠시 일손 도우러 집에 머물고 계신 때여서 너무나 창피하였다. 또 어떤 날은 엄마가 즐겨보시던 가요무대에서 들었던 노래를 한 절이나 부르고 그 뒤에 어떤 가사냐고 묻다가 동태 손질하시던 엄마한테 무안만 당했다. 남쪽나라 십자성이 물 위에 어리면~으로 시작되는 꽤나 시적인 노래여서 가사를 더 알고 싶었던 것 같다. 마지막 기억은 5학년 겨울방학 때 아랫목에서 도토리 까는 것을 도와드리며 기분 좋게 떠들고 있었는데, 그때 돌아온 말은 입냄새가 심하니 그만 떠들라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바쁜 엄마는 그리 다정하지 않으셨고, 나는 엄마 앞에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엄마는 늙고 나는 20대가 되니 딸이 엄마한테 말을 안 한다고 서운해하셨다. 솔직한 내 마음을 말로 하기만 하면 나중에 계속 회자되며 놀림을 받고, 그때 그렇게 말하지 않았었냐며 따지는 엄마와 언니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기에 내가 선택한 방책은 입을 계속 다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우리 아기한테 엄마가 말씀하시는 어조는 태초에 들었던 목소리 같았다. 분명 들었지만 묻혀 있었던 목소리. 언젠가는 들어봤던 다정한 그 목소리였다. 20여 년 만에 잊었던 엄마의 목소리를 다시 들으며 나는 다시 한 단계 깊은 기쁨과 평온함을 느꼈다. 우리 엄마한테도 저런 목소리가 있었구나. 오남매 기르느라 지쳐 있던 엄마, 늦동이까지 낳아서 육아에 40년을 쓴 우리 엄마였으니 오죽 삶이 고단했을까 싶다.
몸조리하던 나를 행복하게 해준 세 가지 소리, 넘치던 풀벌레 소리, 다정한 엄마의 목소리, 그리고 우리 아기의 소리이고, 평생 따뜻한 기억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예전의 엄마가 된 것 같다. 일하며 아이 키우고 진학시키고, 내 공부까지 하며 살림은 살림대로 하니 마음의 여유가 없다. 말이 빨라지고 한 번에 알아들으라고 소리 높여 말한다. 듣는 우리 아이들도 엄마가 다정하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어린 시절의 엄마는 정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셨다. 그런 옆에 가서 이렇고 저렇고 얘기하던 어린아이를 대할 여유가 없으셨을 것이라고 애써 생각하며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한다. 눈물이 난다. 이렇게 나도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
내가 어린 시절에 상처가 있었기에 살면서 늘 다짐했다, 우리 아이들이 나에게 입을 닫는 그런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행히 우리 집엔 아직 고양이 소리와 막내의 어릿광대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 행복한 소리를 들으며 나도 조금씩 여유롭고 부드러워졌겠지, 싶다. 시대가 육아에 온정성을 기울이는 방향으로 바뀌기도 하고, 나도 엄마와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아서 아이도 빨리 낳고 좀 더 아이들에게 다정해지려고 노력했다. 반복되는 운명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의지이고 마음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지만, 나의 노력으로 우리 자녀들은 좀 더 나은 유아기를 보냈길 바라며 아이들은 한 번 더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