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예전부터 사건 현장은 있는데 범인은 없는 일이 많다. 세 자녀 키울 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지금도 이런 이상한 일이 계속되는데, 나를 더 고뇌하게 만드는 것은 의심 가는 존재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바로 고양이 네 마리가 용의 선상에 추가된 것이다. 자그마치 일곱 존재가 내 의심을 산다. 평소 솔직한 남편은 여기서 빼준다.
사건현장을 발견하면 나는 자못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장과 정황을 살핀다. 지난 일요일에 누군가 화분을 엎었다. 범인 또는 범묘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집엔 딸과 고양이 네 마리뿐이고, 딸과 밀은 침대에서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그럼 이제 홍이, 현이, 후추로 좁혀진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홍이가 있다. 홍이가 모른 척 스크래쳐 위에 앉아있다. 표정은 편안하기 그지없다. 아무렴, 우리 분별력 있는 홍이가 화분을 엎었을까? 그래도 수사는 공정해야 하니 발 검사를 했다. 홍이 발은 깨끗하니 이쁘기만 했다. 역시 괜한 의심이었다. 홍이를 수사하며 내 수사에 공정함을 더했다.
현이 발도 검사하려고 현이를 찾았다. 범인은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더니 현이가 유유히 쏟아진 흙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럼 현이가 범인인가? 발검사 하려고 다가가려는데 등에 뭔가 잔뜩 묻어 있다. 화분을 쏟고 그 위를 뒹굴기까지 했던 것이다. 현이는 정말 숨김없고 솔직한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자수라도 한 것처럼 잘했다고 쓰다듬어 주었다. 제 발로 걸어온 바람에 범인도 찾고 수사가 일찍 종결되어 피로감이 덜했다. 기분이 좋았다.
기쁨도 잠시, 범인을 찾으면 뭐 하겠는가? 어차피 청소는 내 몫인걸. 범인, 아니 범묘 현이는 다시 그러지 말라는 나의 간곡한 부탁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 같았다. 돌돌이로 털도 말끔히 정리해 주니 총총 어디론가 뛰어간다.
현이를 깨끗이 단장해 주었으니 화분을 치울 차례다. 흙은 주워 담고, 빗자루질하고, 뿌리까지 드러난 식물을 다시 심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물걸레질. 그래도 미제사건이 많은 우리 집에서 범묘도 찾고 사건이 일찍 종결되었다. 현이도 잡아떼지 않고 순순히 제 발로 걸어와 주었다. 이거면 되지 더 무엇을 바랄까. 내 수사력에 혼자 만족했다.
오늘은 직장에서 유난히 힘들었다. 참기 힘든 어려움이 계속되면 몸에도 이상이 생기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다. 현명하게 견디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주변 상황이 암울하다. 나만 잘해서는 안 되는 일이 참 많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퇴근 후에는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하고 장장 네 시간 정도 집안일을 했다.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은 많고도 많다! 간신히 마치고 책상에 앉았는데 밖에서 또 화분 엎어지는 소리가 난다. 누구야!
이번엔 귀염둥이 막내아들(사람)이 조용히 다가와서는 자기가 그랬다고 고백한다. 이 밤에 치울 생각에 한숨이 나왔지만, 아이 표정도 자못 난처해 보인다. 학교 다녀와서 처음 한 일이 화분 엎은 것이란다. 사연을 들어보니 아이도 학교에서 힘든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점심 먹다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에 빨간 국물이 튀어서 내일 낮에 햇빛에 소독한다고 어두운 베란다를 나가다가 그만 화분을 엎었단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했다. 엄마가 내일 아침에 화분을 치워준다고 하고 아이를 보낸다. 집에 들어올 때부터 잠이 부족해서 빨리 씻고 자고 싶다는 말을 하던 모습이 떠올라 차마 직접 치우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기분이 좋은지 막내는 졸졸 따라다니던 현이를 쓰다듬어 주며 예뻐해 준다. 범인들끼리 참 친하다. 화분엎기연합회라도 같이 가입된 모양이다. 나도 수사관 말고 범인이 되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