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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19_제가 말을 못 한다고요?

by 홍홍

반려동물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서로 통한다는 느낌이 분명히 있다. 눈빛 같은 비언어적 요소로도 통하지만, 말로도 통한다. 우선 고양이는 자신의 이름을 알아듣고, 같이 지내는 다른 고양이의 이름도 안다. 밀한테 말을 하는데 밀이 대꾸도 안 하고 있으면 나머지 아이들은 밀을 바라보고 있다. 뭐라도 한마디 해드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말이다. 다른 간단한 말도 알아듣는다. 많은 가정에서 이러한 소통이 가능한데, 이는 반려동물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보호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 가능하다.

20220417_115310.jpg 홍밀 남매

첫째 고양이 홍이는 산에 살 때 소리를 내지 않았다. 키워주시던 이모님이 홍이는 벙어리라는 가슴 철렁한 얘기까지 하셨다. 야옹 소리도 안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두 번 정도는 희미하게나마 야옹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홍이를 입양하던 날, 이동장에 넣어 불암산에서 집까지 오늘 길에도 쉬익쉬익 소리만 냈다. 자신이 느끼는 공포를 소리 질러 내뱉지 못하는 홍이를 보며 미안하고도 가슴이 아팠다. 비명이라도 지르면 덜 미안했을 것 같다.

20210406_073932 (1).jpg 산에서 온 직후

지금은 홍이가 무척 수다스럽다.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수다스러워졌다는 수의사 선생님 말씀에 마음속이 따뜻해진다. 홍이는 산에서 살면서 성대를 이용한 발성이 필요 없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과 살며 계속 인간의 소리에 노출되고, 의사소통하면서 홍이도 말을 하게 되었다. 고양이 보호자들이라면 느끼겠지만 심지어 나를 '엄마~'하고 부르며 다가온다. 그리고 '홍이 어쩌고저쩌고 yeah~',하면 홍이도 '예~'라는 말을 반복한다. 또 아침에 눈 뜨고 서로 처음 만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뭐라 뭐라 말하면서 내게 다가온다. 바쁘게 설거지 마치고 뒤를 돌아보면 늘 홍이가 앉아 있다가 호소력 있게 말을 걸며 내게 다가온다. 나도 홍이가 낸 소리와 똑같은 높은 소리로 말을 걸며 다가가서 안아주면 홍이는 기분이 좋아 몸을 내 몸에 바짝 붙이고 요리조리 문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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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노래도 안다. 간단한 노래를 반복해서 불러주니 꼬리로 박자도 맞추고 기분이 좋아 보인다. 하이라이트는 늘 똑같은 소리를 내며 따라 한다. 특유의 뒷발질을 해가며 노래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서로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노력과 마음가짐이 있으면 이렇게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얼마나 소통하고 싶으면 반려동물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해석해 주는 앱도 나왔을까. 미국 고양이용인지 우리 상황에는 잘 맞는 때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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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간의 우월함을 증명하고 싶을 때 '인간은 동물과 달리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언어는 고등 사고능력이 발달해야 가능하므로 언어가 있다는 것은 뛰어난 사고력이 있다는 의미도 덩달아 갖는다. 나는 홍이와 살면서 이러한 오만은 인간들끼리 하는 얘기라서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좋은 마음으로 말 못 하는 짐승한테 그렇게 나쁘게 하면 천벌을 받지, 라고 한다. 동물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의도는 좋다. 하지만 이 말에도 동물은 인간의 말을 못 하는 열등한 존재라는 속뜻이 들어 있다. 동물을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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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그들의 언어를 쓰고 있는데, 인간이 그것을 못 알아듣고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안타까워한다. 영화 '컨택트'는 외계인과 소통하는 언어학자를 보여준다. 문어처럼 생긴 외계인들이 커다란 동그라미를 중심으로 하는 아주 아름다운 무늬를 만든다. 혹시 먹물을 쏘는 것인가 생각할 정도로 검은 물이 흐르듯 유려하게 그려진다. 주인공인 언어학자가 그들의 언어가 인간과 다른 '의미표시 문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와 달리 표현하는데 글의 앞뒤도 없고, 소리도 없고, 시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까지도 알아낸다. 어떻게 이 어려운 일을 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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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는 외계인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두 가지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모르는 언어를 배우려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와 직접 교류하고 소통하려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것, 또 한 가지는 인간 언어와 다른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언어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언어뿐 아니라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기본 전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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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보면 인간은 전 지구를 동서로, 혹은 남북으로 교류하며 발전해왔다. 농사를 짓고 순한 초식동물을 가축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그 어느 시대보다 닭이 많이 살지만, 닭의 전성시대는 아니다. 닭의 역사에 가장 슬픈 시기이다. 이처럼 인간은 지구의 자원을 독점하며 발전해왔다. 이 과정에서 동물은 배제되거나, 혹사당하거나, 멸종되었다. 이러한 역사가 인간의 횡포이며, 이것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홍이와 함께 살며 더 가슴 아프게 느끼고 있다. 동물들에게 미안하다. 그러니 인간이 그들을 돕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주변의 동식물에 마음을 주며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면 어떨까? 분명 우리 시야가 더 넓어지고 큰 성장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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