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1_눈길

by 홍홍

산은 무언가를 감추기에 좋은 곳이다. 감출 것이 있는 사람이 산에 오른다.


***

“지민아, 출동이다. 화채능에 추락사고래!”

출동을 준비하는 박 팀장의 손은 말보다 더 빨랐다. 어제는 눈 쌓인 화채능선 바윗길 틈새로 겨울바람이 으르렁거렸다. 꽁꽁 얼어붙은 고요한 산의 새벽을 깨운 건, 둔탁한 낙빙 소리였다. 급히 나서는데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누구지? 전화 받을 틈도 없이 현장으로 뛰면서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현장에 도착한 지민은 하니스의 버클을 다시 한번 점검한 뒤 피켈을 양손에 쥐고 고개를 들었다. 위쪽에는 아까부터 손수건을 흔들며 어쩔 줄을 모르는 한 여자가 있었다. 공포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얼굴이 퍼렇게 굳어 있어 간신히 입만 움직이는 모양새였다. 눈 쌓인 바위틈 아래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빨리요!”라고 외쳤다. 바위 능선을 같이 등반하다 사고를 맞은 동료를 보고 있자니 좌불안석인 것 같았다. 저러다가 저 여자마저 떨어질까 봐 걱정되었지만, 여자는 옆에 서 있는 소나무를 꼭 잡고 있었다. 지민은 묵직한 구조 가방을 어깨에 메고, 천천히 바위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얼어붙은 구간이 있어 아이젠 끝에 힘을 주었다. 눈과 얼음이 미끄러워 간신히 바위 홈에 피켈을 걸고 균형을 잡았다. 얼음과 바위가 뒤섞인 구간이 많아 신경을 곤두세우니 겨드랑이에 땀이 스며왔다. 떨고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추위와 불안이 점철된 두 눈은 낯설지가 않았다. 눈 덮인 협곡 저편에서 들려오는 까마귀 떼가 마치 무언가를 경고하듯 길게 울었다.

중간쯤 오르니 날렵한 몸매의 남자 하나가 바위틈에 끼어있다. 얼굴은 얼음과 바위에 쓸려 피투성이다.

“일행분은 어떻게 하다 다치셨나요?” 지민이 큰 소리로 물었다.

“저희 남편인데요, 앞에 가다가 갑자기 떨어졌어요. 사실 저도 잘 못 봤어요. 그리고 아까부터 말을 못 해요. 어쩌면 좋아요.”

지민은 여자의 흐느낌을 들으며 소나무에 자일을 고정한 뒤, 현장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다. 곳곳에 숨어 있는 얼음이 미끄러웠다. 남자는 좁은 바위틈에 끼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지민은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바위에 몸을 붙이고 균형을 유지한 채 상체를 숙여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남자는 눈알만 굴리며 덜덜 떨고 있었다. 동공의 크기가 일정한 걸 보니 머리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등은 크게 다친 듯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이럴 땐 절대 몸을 움직이거나 뒤틀어도 안 된다. 뼈와 인대만 다쳤다면 모를까 추간판이 손상되면 척수나 신경을 다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의식이 있었지만, 혼자서는 끌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구조하러 온 자가 또 다른 도움을 기다려야 한다니. 몸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기댄 어깨를 더 세게 밀었다. 지민의 호흡이 더 가빠졌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7년 전 사고였다. 그때도 선배를 구하지 못한 채 멈춰버린 듯한 시간 속에서 무력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구조대원의 옷을 입고 있음에도, 혼자서는 단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예전과 똑같은 상황 앞에 놓인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어서 벗어나야 했다. 지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생각을 쫓아내려 했다. 애써 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불끈 나올 것만 같아 숨이 막혔다. 앞에 있는 남자에게 집중해야 해! 지민은 가위에 눌리지 않으려 애쓰듯 입으로 중얼거렸다.

“지민아, 정신 안 차려?” 곧이어 올라온 박 팀장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둘은 호흡을 맞추어 구조를 시작했다. 좁은 바위틈에서 끙끙거리며 남자의 몸통에 부목을 대고 탄력붕대로 고정했다. 손끝이 야무지다고 칭찬받던 솜씨가 오늘도 빛을 발했다.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핫팩을 옷 속에 넣어주고 구조 헬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구조 한 건을 마무리했다.


***

“너 집에도 안 내려오고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위험하지는 않고?”

전화기 너머로 연달아 건너오는 엄마의 물음에 지민은 대꾸하지 않았다. 잘 있다는 한마디를 겨우 내뱉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무심한 듯 일상적인 것을 물었지만 지민의 목소리를 들으며 안도하고 있을 터였다. 지민이 호기롭게 들어간 산악회에서 큰 사고를 당하고 집에만 있을 때도 출퇴근으로 바빠도 엄마는 딸의 끼니를 빼먹지 않았다. 정신과 치료를 하는 날은 조퇴하고 동행했다. 비록 진료실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진료 후 짧게 이어지는 의사의 소견을 들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민이 휴학을 거듭하다가 히말라야 원정을 준비하겠다고 했을 때도 말리지 않았다. 다들 집에서 허락받기가 어려운 상황에 지민은 쉽게 허락을 받아내어 다들 의아해했다. 딸이 큰 사고를 겪었지만, 대학 시절 내내 산악회 활동을 이어왔고, 졸업 전에 꼭 흰 산에 가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그저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넣고 삶을 시험하려는 딸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면 엄마의 허락이 고맙다고 생각하면서도 말리지 않는 것이 서운하기도 했다. 원정 출발을 한 달 정도 앞둔 시기에 혹시나 하고 지원한 설악산 구조대 인턴십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도 엄마는 기뻐하지도, 걱정하지도 않았다. 드물게 나오는 여자 구조대원 채용인 데다가 산악회 선배가 추천해 준 자리여서 고민이 컸다. 일주일간 끙끙거리며 고민한 끝에 흰 산 대신 현실적인 선택을 했을 때도 엄마는 위험하지 않겠냐는 한마디만 했을 뿐이었다.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잘 되었다며 선배들도 애써 아쉬움을 감추며 응원해 주었다. 지민은 원정을 포기한 대신 구조대원이 되어 사람을 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남다른 체력과 조용한 성격에 딱 맞는 일이었지만 자취방을 청산하고 설악산으로 향하는 길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버스 창문에 스친 자기 얼굴에 잠시 시선을 두는 순간 유리 속 얼굴 뒤편에 다른 누군가의 시선이 겹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눈빛은 오래 남았다.

***

설악산에서 첫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때 이른 폭설이 내려 쌓이더니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다. 더 이상 눈 소식이 없어 폭설 대비 산악 구조 훈련을 한라산으로 가서 해야 할 정도였다. 기후변화로 설악산에 단풍다운 단풍도 들지 않았는데 늦가을 폭설마저 내려 탐방객도 줄었다. 자기 없이도 성공하고 돌아온 아마다블람 원정대를 보며 부러운 마음도 한쪽에 남아 있었다. 후배가 정상에서 태극기와 학교 깃발을 들고 찍은 사진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추위에 꽁꽁 얼어 온통 새카만 얼굴에 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얼굴이 자신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며 먼 하늘을 보기도 했다. 그래도 석 달의 수습을 마치고 정직원이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설악산 구조대라고 옷마다 새기며 다니는 자기 모습이 신기하여 빙그레 웃음 짓는 날도 있었다.

해빙기는 등반가들에게 괴로운 시절이고 그건 구조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낙석 사고가 잦아 조회 때마다 상황별로 구조 방법을 논의했다. 더구나 봄맞이 탐방객이 늘어나는 만큼 사고도 자주 일어나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사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산의 날씨는 변덕스럽기로 유명하지만, 아침부터 싸라기가 내리더니 거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렸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산안개가 피어오르는 산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적벽에 매달린 사람이 이상하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하강을 완료한 사람도 몸을 심하게 떨고 있다는 얘기까지 전한 후 급하게 숨을 고르던 신고자는 머리가 짧은 것으로 보아 휴가 나온 군인들 같다는 첨언도 잊지 않았다. 마침, 설악동에 있던 지민과 박 팀장이 장비를 챙겨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비선대를 지나 적벽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 미끄러웠다. 다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숨을 고르며 발을 내디뎠다. 적벽은 오버행이 유명한 곳인데, 혈기 왕성한 청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도착해보니 저체온증이었다. 한 사람은 하강을 완료하여 지상에 있고, 한 사람은 오버행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지상에 있는 사람은 이미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가방에서 옷을 꺼내 젖은 옷을 갈아입히며 말을 걸었다. 눈 뜨는 것도 귀찮은지 눈꺼풀이 올라가질 않았다. 사고를 당하면 의식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침낭을 꺼내 덮어주고, 열을 빼앗기지 않도록 위에 판초를 덮어 여민 후 위를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마지막 피치를 하강하는 중에 멈추어 있었다. 하강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생명줄인 자일은 꼭 잡고 있었다.

이런 긴박한 순간에 벼락에 쓰러졌던 정아 선배가 생각났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무력감이 되살아나 무서워졌다. 여름 산에서 놀라서 뒤로 주저앉던 공포감이 그를 엄습했다. 몸이 굳고 손이 떨려왔다. 그러면 안 되었다. 지민은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때 박 팀장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지민아, 괜찮아? 힘들면 나한테 맡겨.”

허공에 매달려 떨고 있는 남자를 어떻게 끌어내릴까. 오버행은 또 어떻게 돌파할까.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햇빛을 뚫고 접근 경로를 탐색했다. 다른 팀이 내려오면서 회수하지 못한 자일이 눈에 띄었다. 그래 저거다! 암벽등반에 서툰 이는 자신의 장비를 회수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 덕을 보게 생겼다. 적벽이 허리를 숙이는 바위 둔덕엔 벼락을 맞아 생명이 없어진 향나무가 용케도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있어 사람들은 그 나무에 자일을 걸고 하강했다. 번개에 꺾여 나간 가지가 두 팔을 벌린 듯 서있다. 오랜 세월을 그런 모습으로 버티며 사람들에게 곁을 주니 허리는 어느새 만질만질해졌을 테지. 자일을 힘껏 잡아당기니 팽팽한 반동이 느껴졌다. 몸이 가벼운 지민이 올라가기로 했다.

박 팀장이 밑에서 자일을 붙잡고 앉았다. 지민은 팽팽해진 자일에 유마르를 걸고 허공을 걷기 시작했다. 자일에 매달린 채 천천히 자신을 끌어올리며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순간, 몸무게는 천근처럼 무거웠다. 그것은 단순한 체중이 아니라, 7년 전 사고가 남긴 상처의 무게였다. 선배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무력감, 손발이 얼어붙은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공포가 자일을 타고 되살아나 그를 힘껏 끌어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민은 떨리는 손으로 유마르를 꼭 쥐고, 위로, 위로 팔을 뻗었다.

십 분 넘게 허우적거리며 오르자, 남자와 같은 높이에 도달했다. 그동안 몸은 출렁거렸지만, 마음은 조금씩 중심을 잡았다. 숨소리도 닿을 듯이 가까운 곳에서, 떨고 있는 한 남자가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벼락 맞은 나무에 매달려 사람을 구하러 오다니. 한때 자신을 무너뜨렸던 벼락이 이제는 사람을 구하는 나무를 주었다. 자연의 무자비함이 준 오래된 시험이 이제 끝나는 걸까. 한 걸음, 한 걸음씩 몸을 끌어올리며, 지민은 자신도 모르게 지난 7년 동안 짓눌린 감정들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었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무게를 이겨낼 용기가 생긴 것 같았다. 자연에서 다친 사람을 구하는 동안, 그는 자신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지민은 매 순간 자신을 짓누르는 어떤 힘을 떨쳐내려 애썼고, 새롭게 주어진 힘을 믿었다.

숨을 헐떡이며 남자의 손목을 잡고 얼굴을 살폈다.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눈빛 속에는 두려움뿐 아니라, 지민에게 맡겨진 생명에 대한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지민은 그 절박함에 집중하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지켜야 한다. 절대로, 아무도 잃지 않아.’

허공에서 남자의 하네스를 자신의 자일에 연결해 고정하고, 곧이어 남자를 등에 업는 자세를 취했다. 남자의 자일을 나이프로 끊는 순간, 지민은 무심코 여러 기도를 했다. 생명줄인 자일이 120킬로그램을 견뎌주길, 벼락 맞은 나무도 갑작스러운 무게 증가를 이겨내길. 직접 경험해 보니 끊는다는 행위가 연결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자신은 어디에도 연결되지 못한 존재 같았지만, 지금만큼은 생명을 구하는 자일에 남자와 함께 연결되어 있었다. 8자를 그리며 하강기를 통과하는 자일이 뜨거워졌다. 지민의 마음도 점점 뜨거워짐을 느꼈다.

남자를 안전하게 내려놓고 자일을 푸는 순간, 지민은 몸과 마음이 동시에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바람이 차갑게 스치고 흩날리는 눈발이 얼굴에 부딪혔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오히려 마음은 따뜻해졌다. 자신이 7년 전에는 잡지 못했던 생명을, 지금은 지킬 수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묘하게 벅찼다. 그동안 자신을 짓누르던 죄책감과 무력감이 조금씩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 같았다.

사무실에 돌아온 지민은 커피 한 잔을 들고 눈 덮인 산을 올려보았다. 눈부시게 흰 설경 속에 듬성듬성 빈 자리가 남아 있었다. 지민의 마음속에도 빈자리가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었다. 어떤 자리에는 자신의 과거가, 어떤 자리는 현재의 자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상처가 모두 사라지면 빈자리는 없어질까. 빈자리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지 생각했다. 어쩌면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을 안고 움직일 힘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산은 여전히 많은 것을 감추고 있었지만,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고,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지민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 시간이 흐르며 산의 모습이 바뀌듯, 마음의 상처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모양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상처 위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는 것을.


***

설악산에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그 사이 지민은 크고 작은 사고를 처리했다. 더 새로운 사건이 생길까 싶을 즈음에 토왕성폭포 하단에서 구조 요청이 왔다. 겨울이면 빙폭 등반으로 유명한 곳인데 여름에도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강하는 길에, 바위틈에 자라던 삼지구엽초를 따겠다고 펜듈럼을 하다가 확보물이 빠진 사고였다. 사고자는 출발 지점에서도 한참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를 구조하러 가는 길은 왠지 익숙했다. 서둘러 뛰어 내려가던 지민은 갑자기 멈칫했다. 사고자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 웅성거리는 목소리들, 그리고 발밑 바위 아래 샘터의 흔적이 오래전 자신이 울며 도망치던 기억과 겹쳤기 때문이다. 마음 한쪽이 무겁게 조여오며, 잠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날카로운 박 팀장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야, 김지민! 어서 안 내려와?”

부름에 놀라 지민은 정신을 차리고 후들거리는 다리에 간신히 힘을 주어 한 걸음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와 눈빛이 맴돌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사실 샘터로 내려오며 놀란 건 지민만이 아니었다. 박 팀장 역시 이곳 지형이 자신이 과거 오대산에서 수습했던 사고 현장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사실에 아찔했다. 그때도, 구조 현장에는 여럿이 쓰러져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오던 등산객이 최초로 발견한 벼락 피해자, 그리고 그를 보고 놀라 쓰러진 동료들. 주변에는 흩어진 수통과 장비들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박 팀장은 그날의 기억이 지민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정신을 다잡아야 했다. 차마 그때의 지민을 똑바로 쳐다볼 수는 없었지만, 지금은 그를 이끌고, 위험한 사고 현장에서 한 발씩 나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맡았다. 과거와 현재, 두 산의 사고는 지민과 박 팀장을 묶는 실처럼 이어졌고, 그 가느다란 실을 통해 지민은 조금씩 스스로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사고유형을 익히다 보니 설악의 계절을 한 바퀴 돌았다. 이때 지수가 취업 축하 겸 설악산에 온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지민아, 연락하기 힘드네. 나 이번 주말에 설악산 갈까 해. 한번 보자."

문자는 짧고 가벼웠지만 지민은 바로 숨을 멈췄다. 그 문장은 짧지만, 끝에 보이지 않는 고리가 달려있었다. 잡아당기면 7년 전의 여름이 딸려 나올 것 같았다. 게다가 지수는 먼저 연락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민이 지수를 처음 마주한 그 사고. 기억하고 싶지 않아 외면하고 있었다. 지민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물었다.

"누구랑 와? 혼자는 아니지?"

그동안 멀쩡하던 날씨가 하필 지수가 온다는 주말에 폭설이 예보되었다. 지민이 다음에 오면 어떻겠냐는 문자를 보냈지만, 지수는 친구와 함께 가니 걱정하지 말라며 귀여운 이모티콘까지 보냈다. 눈은 밤에 기습적으로 내렸고, 야영하던 텐트 위로 쏟아져 내려 여기저기 조난신고가 들어왔다. 지수한테는 연락이 한참 전에 오고 새로 오지 않았다. 지민은 오전 구조를 마무리하고, 십이선녀탕 조난자 수색에 투입되었다. 연락이 끊긴 등산객이 있다는 신고였다.

공룡능선을 따라 눈을 뚫고 십이선녀탕으로 내려가는 길. 이 길은 지민이 애써 피하던 길이었다. 가본 적은 없지만 생각만 하면 정아 선배가 생각나서 가슴이 아려왔다. 1학년 때였다. 오대산 능선 종주 중에 배낭을 줄줄이 세워놓고 쉬고 있었다. 지난밤에 달빛을 받고 지나온 소금강의 정취가 물소리가 아쉬워서 다들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마침, 수통에 물이 다 떨어져서 물 떠올 사람을 정하고 있었다. 그때 오랜 산행에 지쳐있는 후배들을 위해 3학년인 정아가 수통을 모아들고 샘을 찾아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민도 정아를 따라나섰다. 힘들 때마다 격려해 주고, 남몰래 배낭의 짐도 하나씩 빼서 자기 배낭에 넣던 정아를 마음속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정아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았는지 한참을 내려가도 샘이 없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작은 샘이 있어 수통 먼저 채우고, 허겁지겁 물을 마시고 세수도 하며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혔다. 샘을 찾으러 헤맨 길만큼 올라가는 길도 힘들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정아는 후배를 많이 걷게 한 게 미안했던지, 한여름 설악산 십이선녀탕이 얼마나 시원한지 이야기해 주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복숭아씨같이 생긴 소가 하나씩 나오는데 그렇게 멋지고 시원하다? 거기서 선녀들이 목욕했대. 지민아, 우리 꼭 한 번 같이 가자.”

듣기만 해도 시원한 얘기에 복숭아 통조림의 단맛까지 생각나 지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마른번개가 번쩍이기 시작하더니 후드득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둑해지는가 싶더니 사방이 번쩍 빛나고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지민은 깜짝 놀라서 주저앉고 말았다. 빛이 눈을 뚫고 들어와 뇌 속 깊숙이까지 파고들었다. 누군가의 비명이 고막을 찢더니 아득히 사라졌다. 간신히 눈을 뜨고 놓쳤던 수통을 집어 들고 보니 끔찍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한 발짝 앞서 걷던 정아가 쓰러져 있었다. 미동도 없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정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업고 올라가고 싶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 오직 지민만 움직이고 있었다. 숲이 숨죽이고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 뒤로는 어떻게 위로 올라왔는지 모른다. 네발로 기어서, 그곳이 아닌 곳으로, 허우적거리며 도망쳤다.

천둥번개에 비까지 내리는데 한참이 지나도 정아와 지민이 돌아오지 않자, 동기들이 찾아 나섰다. 그때 바로 무엇에 쫓기듯 정신없이 올라오던 지민을 마주했다. 그는 동기들을 보자마자 무엇에 놀랐는지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무서움에 벌벌 떨다가 파랗게 질린 얼굴이 굳어 있었다. 양미간이 한데 붙을 듯 찡그린 채 쓰러진 자기 모습이 보였다. 내가 죽으면 이런 모습일까? 자신이 죽은 듯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생경한 일이었다. 사고를 직감하고 뛰어 내려간 남자 동기의 등에 축 늘어진 정아가 업혀 있었다. 그날 지민의 몸에서 나온 지수는 정아와 지민을 번갈아 보다가 두려움에 얼굴을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사고 이후 지민은 자기 안에서 들리기 시작한 외마디 소리를 기억에서 밀어내려 몸부림쳤다.


***

십이선녀탕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뿌연 눈이 세상과 지민을 가르고 있었다. 십이선녀탕까지 달려가는 길에 구르기를 수십 번이었다. 눈은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이미 무릎보다 높이 쌓인 눈을 몸으로 가르며 걸으니, 한겨울에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전기 신호는 간헐적으로 잡혔다가 사라졌다. 눈바람에 시야는 점점 흐려졌다. 그러다 문득, 능선 아래에 오래된 산장이 보였다. 여기쯤 산장이 있었지? 주인장은 겨울이면 추위를 피해 마을로 내려가서 비어 있었다. 대신 문은 잠그지 않아 누구라도 대피할 수 있었다. 누가 안에 있는지 희미하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몸을 녹이며 행동식이라도 먹을 요량으로 눈을 뚫고 너른 공터를 지나 문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산장 문을 미는 순간 강렬한 빛에 팔뚝으로 눈을 가렸다. 얼어붙은 오버미튼이 눈발에 언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방 안에도 눈이 내리는지 사방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 안엔, 한 여자가 앉아있었다. 이상하게도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못 느꼈는지 여자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

‘혹시 지수?’ 분명 지수였다. 지수는 추위에 찌들고 폭설에 놀랐는지 눈이 찌그러지고, 파랗게 변한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힘없이 앉아있는 모습이 곧 쓰러질 것 같았다. 7년 만에 만난 지수는 몹시 수척해 보였지만, 거울에서 늘 보던 익숙한 얼굴이었다.

“눈사태로 조난했다는 사람이 지수 너였어? 같이 온다던 친구는?”

“지민아, 잘 있었니?”

대답 대신 들려온 말은 안부 인사였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지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얀빛을 등진 지수의 얼굴 윤곽이 희미해졌다. 문득 지수가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 눈 위에 발자국이 하나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민은 이상한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며 들어왔던 문으로 서둘러 나가려는데, 문이 사라지고 없었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하얀 방에 갇혀 버린 것이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자 지민은 지수를 쏘아 봤다.

"대체 왜 날 다시 찾아온 거야?”

"할 말이 있어서 왔어.“

지민은 지수를 외면하며 필사적으로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지민아, 가지 마!”

그때 갑자기 천장이 열리더니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한테 이러지 마! 지민은 속으로 외치다가 뒤로 넘어졌다. 순간 산장 옆의 고봉에 쌓여있던 눈이 쏟아지면서 둘은 눈에 파묻히고 말았다.


***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순간이었다. 끝없이 내리는 눈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모든 것이 멈추고 오직 눈 내리는 소리만 들렸다. 지수의 울 것 같은 얼굴이 지민의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처럼 숨이 막혔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민은 필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돌려 웅크린 자세를 만들었다. 눈은 여전히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지만, 팔꿈치로 간신히 숨 쉴 공간을 만들었다. 그 순간, 자신을 내려다보는 지수의 눈길이 느껴졌다. 그 눈길은 따뜻했지만, 아득히 멀어졌다. 몸 위로 쌓이는 눈은 점점 무거워졌다.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눈이 이상하게도 엄마의 자궁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작은 공간에 지민의 더운 숨이 채워지고, 그의 시간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아득한 꿈길에 지수가 걸어오고 있다. 지민은 상처를 덮고 용감한 사람이 되어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수가 찾아와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았다. 지수가 무슨 말인지 반복하여 말하며 손을 뻗어 지민의 얼굴을 만지려 했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익숙한 모습의 구조대원들이 손으로 눈을 파내며 지민을 구하고 있었다.

“지민아, 정신이 들어?”

“같이 있던 친구는 어떻게 되었나요?”

“친구라고? 옆에 어머니 누워계시잖아. 저렇게 유명한 분이 지민씨 어머니셨어? 어쩐지 지민씨 등반력이 남다르다 했어. 지민씨가 필사적으로 숨 쉴 공간을 만들어서 기적적으로 살았어.”

들것에 실려 내려오면서 지민은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보았다. 햇살이 그의 맨얼굴을 부드럽게 감쌌고,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홀가분함이 피어올랐다. 순간, 하얀 방에서 지수가 얼굴을 만지며 반복하던 입 모양이 떠올랐다. “이제는 너를 구해!” 살기 위해 외면했던 지수, 산속에서 자신을 감추기 위해 선택한 길, 그리고 결국 자신을 지켜주었던 존재의 모습이 겹쳤다.

엄마의 눈빛은 말없이 지민에게 전해졌다. 오래전부터 뒤에서 따라다니며 지켜보던 존재, 산길 위의 그림자 같은 존재가 바로 엄마였다는 사실을, 지민은 이제야 깨달았다. 눈빛만으로 주고받는 교감 속에서, 지민의 가슴속 죄책감과 두려움, 오랜 상처가 조금씩 풀려나갔다. 안도감에 크게 숨을 내쉬어 몸의 긴장을 풀었다. 산의 냉기와 눈보라가 얼굴을 스쳤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도 마음은 따뜻했다. 잠시나마 눈 속에 조난되었다가 구조되고 보니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7년 전엔 잡지 못했던 생명을, 이제는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벅찼다. 산은 여전히 많은 것을 감추고 있었지만, 지민은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했고, 누군가를 구할 힘을 가진 존재임을 확인했다.


***

산은 누군가를 구하기 좋은 곳이다. 다만 그 손길이 어떤 모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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