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10_쿡쿡

이욱정(2012). 쿡쿡. 문학동네.

by 홍홍

지금 보아도 깔끔하고 격조 있는 프로그램, 〈누들로드〉. 이욱정 PD의 작품이다. 국수의 역사를 세세하고도 깊이 있게 파고들어 무척 인상 깊다. 미국인이 진행을 맡아 처음에는 외국 프로그램으로 착각했을 만큼 시선과 구성 모두 낯설고 세련됐다. 국수의 기원을 따라가며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남긴 삶의 흔적이다. 국수를 인류 보편의 시각으로 바라보았기에 가능한 접근이었다.


〈누들로드〉는 음식을 말하면서도 역사와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낸 콘텐츠다. 어릴 때부터 서점에서 문학과 비문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를 읽어온 경험이 이런 기획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콘텐츠 기획자에게 유연성은 생명이고, 이를 위해서는 폭넓은 관심과 잡식성 취향이 필요하다. 예능과 교양의 경계에 서 있는 이 프로그램은 국영방송이라는 틀 안에서 오히려 형식을 깨며, 창의적인 기획자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으니, 다양한 취향은 결국 새로운 조합을 낳고, 그 조합이 콘텐츠의 힘이 된다.


촉망받던 PD가 방송국을 잠시 떠나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다. 생업을 내려놓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용기를 냈을까? 그는 창의성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었고, 이미 자신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은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음먹자마자 실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라 불리는 르 꼬르동 블뢰 런던을 졸업하며 칼과 불을 다루고, 농어를 손질하는 일까지 해냈지만, 『쿡쿡』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은 기술보다 경험이었다고 한다. 나는 인간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한 ‘경험하고자 하는 욕망’을 들여다보게 되었으며, 자신의 삶과 감각에 끝까지 귀 기울이는 한 인간을 만났다. 두려움보다 선택을, 망설임보다 기록을 택했기에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책은 결국, 자신의 목소리에 끝까지 귀 기울이려 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유학 당시 한겨레신문에 2주마다 글을 기고했는데 그 글들이 나중에 책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그때 힘들다는 이유로 기록하지 않았다면, 그 시간은 그냥 지나간 경험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새벽 서너 시까지도 글을 썼다고 하니 방송국에서 일하며 몸에 밴 빡빡한 루틴과 근성은 이후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누구나 갈망이 있다. 그 갈망이 말을 걸어올 때 대답할 수 있는 자, 얼마나 행복한가.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를 따라 바로 런던으로 날아간 용기. 요리 테크닉뿐 아니라 요리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은 역시 상상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에서도 밝혔지만 요리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상상력이다. 그는 요리는 요리사보다는 씽커가 만든다고 했다. 요리는 다른 분야와 다르게 똑같이 만드는 것이 칭송받는 분야이다. 훌륭한 요리를 똑같이 재현하는 것도 능력이지만 상상력을 가지고 요리를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 시대야말로 기술보다 생각하는 방법이 중요한 시대이며, 기획하는 씽커들의 시대가 왔다고 말하는 그의 혜안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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