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박과장은 출근하면 먼저 깊은 허탈함이 밀려왔다.
커피를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내 일이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네.’
오랫동안 회사의 문제 해결을 맡아왔지만
그게 실력이 아니라 ‘익숙함’ 때문이라고 여기기 시작한 뒤로
일에 대한 열정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사원이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과장님! 고객사에서 로그인 안 된다면서 긴급 요청이 들어왔어요!”
박과장은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나인가… 이젠 이런 일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을 텐데.’
회의실 문이 닫히자 공기는 금세 긴장으로 가득 찼다.
나사원은 초조하고, 임대리는 로그를 빠르게 훑고,
이부장은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박과장은 모니터 앞에 서서 화면을 천천히 살폈다.
그런데 익숙해야 할 로그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내가 요즘 정말 예전 같지 않은 건가?’
그렇게 흔들리던 순간,
로그의 반복되는 부분에서 오래전 한 번 겪었던 패턴이 떠올랐다.
“이거… 그때랑 비슷하네.”
박과장은 몇 가지 설정을 조정했고
곧 멈춰 있던 에러 메시지가 조용히 사라졌다.
“정상 접속 확인됐습니다.”
모두가 긴 숨을 내쉬었다.
나사원이 감탄하며 말했다.
“과장님은 어떻게 이런 걸 바로 보세요?”
박과장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냥… 예전에 봤던 거라. 별거 아냐.”
하지만 말하는 자신이 더 허무했다.
정말 별거 아니었을까?
그걸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누구나였을까?
바로 그때 임대리가 말했다.
“과장님은 맨날 ‘사소한 거’라고 하시는데요…
그게 사실 제일 대단한 거예요.”
그 말이 박과장의 마음을 살짝 흔들어놓았다.
회의실을 나서는데 이부장이 그를 불렀다.
“박과장, 요즘 왜 네 일을 자꾸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나?”
박과장이 자신 없게 말하자
이부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박과장이 익숙한 것이겠지만 남들에겐 여전히 미궁이야.
그 익숙함을 만들려고 박과장이 얼마나 고민하고, 버티고, 실패했는지…
정작 본인이 제일 모르더라.”
그 말이 박과장의 가슴 깊은 곳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자리로 돌아온 박과장은 오래 앉아 생각에 잠겼다.
문제는 실력이 아니라,
익숙해진 자신을 스스로 평가절하하는 마음이었다.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오래 해온 건… 괜히 된 게 아니지.”
“익숙하다는 건, 잘한다는 뜻이지.”
그날 퇴근길, 오랜만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오래 해온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장 먼저 자신을 깎아내리게 된다. 하지만 그 익숙함을 만들기 위해 쌓아온 시간과 경험은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다. 익숙해진 건, 잘하게 됐다는 뜻이다. 자신을 폄하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