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남기지 않는 이메일 습관

by 이부장

사무실 한쪽에서 키보드 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아침의 차분한 공기 속에서, 임대리의 표정만은 어딘가 무거웠다.


평소 밝던 그녀가 깊은 한숨을 쉬자

신입인 나사원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시 뒤, 팀에서 벌어진 일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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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고객이 보낸 모호한 메일 한 통.

“...A 기능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요청인지 의견인지 애매한 문장이었다.


임대리는 그냥 ‘하소연이겠지’ 하고 넘겼다.

그리고 몇 달 동안 답장은 없었다.


그런데 어제, 고객이 전화를 걸어왔다.

“지난번 요청드린 A 기능은 개발은 완료되었나요?”


임대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고객은 그 메일을 ‘정식 요청’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침묵한 몇 달은

고객에게는 ‘네, 진행하겠습니다’로 들린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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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침 회의실은 긴장으로 가득했다.

김상무가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 업계에서 답장이 없다는 건

대체로 ‘동의’로 간주됩니다.

고객은 여러 업체와 일하니까

우리가 침묵하면 승인으로 받아들여요.”


이어 이부장이 조용히 덧붙였다.


“메일의 ‘To’에 내 이름이 들어갔다면,

그건 몇 년이 지나도 책임이 남습니다.

모호한 내용은 그냥 넘기는 게

가장 위험한 선택이에요.”


임대리는 고개를 숙였고,

나사원은 그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메일 한 통이 이렇게 큰 파장을 낳을 수 있구나…

이 일을 잘하려면 기술보다 커뮤니케이션을 먼저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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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였다.

나사원은 고객 메일함을 정리하다

비슷한 종류의 메일을 발견했다.


제목은 ‘데이터 전달 방식 관련’.

문의인지 요청인지 애매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부장의 말을 떠올렸다.


_“모호하면 반드시 답장을 남겨라.

기록이 너를 지켜준다.”_


나사원은 차분히 답장을 썼다.


“문의 내용 확인했습니다.

요청인지 단순 문의인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요청일 경우 내부 검토 후 회신드리겠습니다.”


보내기 버튼을 눌렀을 때

손끝에 약한 긴장감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긴장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마음’이었다.


몇 시간 뒤, 고객에게서 답이 왔다.


“단순 문의였습니다. 요청은 아닙니다.”


그제야 그는 긴 숨을 내쉬었다.

작은 회신 하나가 큰 사고를 막은 것이다.


지나가던 이부장이 미소를 지었다.


“좋아. 이렇게 대응하면 문제 없다.”


나사원은 그 말이 마치

자신에게 주는 첫 합격 도장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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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경험이었지만

나사원에게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한 번 체득한 원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결국 ‘실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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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이 모호하면 반드시 답장을 남겨라. 침묵은 동의로 간주될 수 있고, 기록은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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