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는 많지만 평가자는 하나다

by 이부장

입사한 지 몇 달이 지나자, 나사원은 아침마다 카드키를 찍는 손길이 자연스러워졌다.

사내 식당 줄도 어느 쪽이 빨리 줄어드는지 대충 감이 잡혔다.

회의실 예약이 왜 그렇게 빨리 사라지는지도 알게 되었고, 커피머신은 9시 10분쯤이 가장 한산하다는 사실도 몸으로 익혔다.


하지만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

‘내 일을 실제로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건 아직 몰랐다.


그날도 커피를 들고 자리로 돌아가던 순간,

멀리서 빠르게 걸어오는 체형이 눈에 들어왔다.

차과장이었다.


“나사원! 지난번에 부탁한 문서 어디까지 됐어요?”


나사원은 커피를 거의 흘릴 뻔하며 답했다.

“아… 오늘 오전까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과장은 조급한 표정이었다.

“오늘 우리 리뷰가 있으니까 오전 중으로 꼭 부탁해요. 완성도도 중요하고요.”


나사원은 한숨을 삼켰다.

지난 일주일, 차과장은 거의 매일 새로운 요청을 해왔다.

처음엔 단순 협조였지만, 어느새 나사원은 차과장의 프로젝트 팀원처럼 되어 있었다.

본래 자신의 팀 업무는 점점 뒤로 밀렸다.


‘그래도 직급도 높고, 시급해 보이니까… 먼저 해드리는 게 맞겠지?’

스스로를 설득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뒤에서 낮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사원, 잠깐 시간 괜찮아?”


박과장이었다.

작은 회의실로 들어가자 박과장은 천천히 노트북을 닫으며 물었다.

“지난주에 부탁한 고객 로그 분석… 아직 진행 안 됐지?”


나사원은 눈을 피하며 말했다.

“…네, 차과장님 일정이 많아서 먼저 처리했습니다.”


박과장은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네 고과자는 누구야?”


순간 심장이 ‘쿵’ 했다.

“…과장님이 써주시죠.”


“그래. 내가 너를 평가해.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나는 거의 몰라. 보고도 없고, 그룹 업무는 밀려 있어. 이러면 평가 때 문제 생길 수밖에 없어.”


나사원은 얼굴이 뜨거워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판단을 잘못했습니다.”


박과장은 단호하지만 따뜻하게 말했다.

“신입이라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아야 해.

네 업무 우선순위는 ‘누가 너를 평가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야.”


그 말이 머릿속을 강하게 울렸다.

“차과장님도 중요한 분이지만, 소속도 아니고 주 업무를 관리하는 사람도 아니야. 협업 상대일 뿐이지 ‘상사’가 아니야.”


회의실 문이 열리며 이부장이 들어왔다.

“요즘 정신없지?”

“네… 솔직히 그렇습니다.”


이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라는 게 직급만 보고 움직이는 곳이 아니야. 조직의 흐름과 관계를 알아야 헛돌지 않아.

차과장한테 끌려다니지 마. 필요하면 조율하면 돼. ‘우리 그룹 일정과 충돌합니다’라고 말해야지.

신입이라고 다 받아주면 안 돼.”


박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할 건 두 가지야.

첫째, 네 일을 정기적으로 나에게 보고.

둘째, 다른 그룹과 협업할 때 우리 일정과 충돌되는지 확인하고 조율.”


나사원은 마음속에서 정리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회의실을 나와 결심하고 차과장 자리로 향했다.


“차과장님, 잠시 이야기 가능할까요?”

“응? 무슨 일이요?”


나사원은 준비한 문서를 보여주며 말했다.

“우리 그룹 일정과 일부 충돌이 있어 조율이 필요합니다.

이번 주 내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먼저라 이 업무는 그 다음으로 진행하면 좋겠습니다.”


차과장은 문서를 보고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좋아요. 그럼 내 업무는 이틀 후로 미뤄도 괜찮아요. 일정만 맞춰주면 됩니다.”


돌아오는 길, 나사원은 마음이 뻥 뚫린 듯했다.

‘말하면 조율이 되는 거였구나.’


퇴근 준비 중, 임대리가 다가와 팔꿈치로 슬쩍 건드렸다.

“오늘 차과장과 일정 조율했지? 드디어 회사 사람 다 됐네.”


나사원은 깊이 깨달았다.

‘누가 나를 평가하는지, 누구에게 내 일을 알려야 하는지 기준으로 움직여야 한다.’


책상을 정리하며 다짐했다.

‘이제는 흐름에 끌려다니지 말자. 누가 내 상사인지, 누구에게 평가받는지 잊지 말자.’



회사에서는 ‘누가 나의 고과자이며,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를 먼저 파악하라.

그래야 우선순위를 정확히 정할 수 있고, 평가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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