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는 없다. 개인을 넘어 팀으로

by 이부장

박과장은 요즘 TF 회의 시간만 되면 명치끝이 꽉 막힌다.

프로젝트 마감은 턱밑까지 차올랐는데, 회의실에 모이는 얼굴들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개발팀 나사원, 고객지원팀 임대리, 그리고 기획팀 서대리.

문서상으로는 완벽한 ‘Cross Functional Team’이다. 하지만 현실의 톱니바퀴는 전혀 맞물리지 않았다.


특히 기획팀 서대리가 문제였다. 그는 회의 때마다 가장 먼저, 가장 높게 손을 든다.


“요즘 사용자들은 이런 기능에 열광합니다.”

“경쟁사 서비스를 보니 이런 흐름이 대세더라고요.”


말은 화려했다. 하지만 박과장이 실무를 묻는 순간, 흐름은 뚝 끊긴다.


“좋아. 그럼 그 기능을 이번 릴리즈에 태우려면 당장 뭐가 필요하지?”


잠깐의 정적.

서대리는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구현 쪽 디테일은… 개발팀에서 판단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순간 회의실 공기가 싸늘하게 식는다.

뒷수습은 늘 박과장과 임대리의 몫이었다. 꼬여버린 일정표를 다시 펴고, 구멍 난 결정들을 메우는 야근이 이어졌다.


어느 날 늦은 밤, 임대리가 박과장을 조용히 찾았다.


“과장님, 솔직히 더는 못 버티겠습니다.

회의는 매일 하는데 결정된 건 없고, 일정 압박은 저한테만 쏟아집니다.”


임대리의 눈밑에 드리운 피로와 짜증은 숨길 수 없었다.

박과장도 할 말이 없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애초에 각 부서 에이스들로만 꾸렸어야 했어.

이런 오합지졸로는 안 돼.’


다음 날, 박과장은 참다못해 이부장을 찾아갔다. 인력 교체를 원했다.


“이부장님, 각 팀의 에이스급 인원들로 재구성해주십시오.

이대로는 과제 제때 못 끝냅니다.”


이부장은 안경을 고쳐 쓰며 박과장을 바라봤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박과장, 에이스만 모아서 일하면 편하지. 그런데 말이야, 그러면 리더는 필요가 없어.”


박과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다들 알아서 120%씩 해내는 사람들이라면, 누가 그 자리에 앉아도 결과는 똑같아.

그건 그냥 ‘관리’지, ‘리딩’이 아니야.”


이부장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단호했다.


“사람 능력은 다 들쑥날쑥해. 누군가는 기획은 50점이지만 분석은 100점일 수도 있어.

박과장이 그 자리에 있는 이유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라는 뜻이야.

완성된 부품 조립은 누구나 해.”


그 말은 박과장의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처럼 남았다.


그날 밤, 박과장은 팀원 명단을 다시 적었다.

지금까지는 ‘못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관점을 비틀었다.

‘이 사람이 가장 잘하는 것’, ‘스트레스를 덜 받는 업무’를 기준으로 다시 생각했다.


며칠 뒤 회의, 박과장은 평소와 다른 화두를 던졌다.


“오늘은 업무 얘기 말고, 각자 제일 자신 있는 것과

죽기보다 하기 싫은 걸 솔직하게 털어놓읍시다.”


나사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 코딩은 밤새도 괜찮습니다.

대신 기획이 자꾸 바뀌면 방향 잡기가 너무 힘듭니다.”


서대리도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사실… 저는 구현 가능성 따지는 건 자신이 없습니다.

대신 새로운 트렌드 찾고 사용자 반응 분석하는 건 좋아합니다.”


박과장은 그 순간 이부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못 본 거지, 없는 건 아니야.’


회의 직후 박과장은 업무 분장표를 뜯어고쳤다.

서대리에겐 ‘트렌드 조사’와 ‘사용자 분석’만 명확히 부여했다.

대신 구현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도록 했다.


변화는 극적이었다.

서대리는 매주 번뜩이는 리포트를 공유했고, 나사원은 논쟁 없이 개발에만 집중했다.

임대리의 표정에도 여유가 생겼다.


“과장님, 요즘은 회의가 진짜 회의 같네요.”


중간 점검 날, 김상무가 회의실을 둘러보며 만족해했다.

회의가 끝나고 이부장이 박과장에게 툭 물었다.


“어때, 아직도 슈퍼스타 에이스가 꼭 필요하던가?”


박과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에이스가 없었던 게 아니라,

제가 사람들을 엉뚱한 자리에 앉혀놨던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퇴근길, 박과장은 깨달았다.

리더의 역할은 모두를 똑같은 에이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울퉁불퉁한 퍼즐 조각들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결국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내는 것.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제 몫을 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것.

그것이 진짜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리더십은 완성된 부품을 조립하는 기술이 아니다.

모난 조각들을 맞춰 그림을 만드는 인내심이다.


팀이 삐걱거린다면 팀원을 탓하기 전에,

그들이 엉뚱한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아닌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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