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박과장은 출근하자마자 메신저 알림을 연달아 확인했다.
어제 밤에 마무리하지 못한 메일이 여럿 쌓여 있었다.
회의 일정, 고객 요청, 내부 이슈 정리.
모니터를 켜자마자 숨이 막혔다.
“과장님, 이거 오늘 안에 답 줘야 한대요.”
임대리가 커피를 들고 와서 말했다.
박과장은 고개만 끄덕였다.
“알아. 일단 이거부터 보자.”
팀은 요즘 정신이 없었다.
고객사 플랫폼 업데이트 일정이 앞당겨졌고, 중간에 요구사항도 몇 번이나 바뀌었다.
나사원은 야근이 잦아졌고, 임대리는 일정표를 붙잡고 하루 종일 전화를 붙들고 있었다.
박과장은 하루가 끝나면 ‘오늘도 겨우 넘겼다’는 생각만 남았다.
그날 오후, 이부장이 박과장을 불렀다.
“과장, 요즘 많이 바쁘지.”
“네, 부장님. 솔직히 정신이 없습니다.”
이부장은 잠시 박과장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말이야, 이제 팀 로드맵을 좀 정리해야겠다.”
박과장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
“로드맵이요? 지금 당장 일도 산더미인데요.”
“그래서 더 필요해.”
“부장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상황에서 로드맵 그려도 의미 있을까요?
일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고, 위에서 떨어지는 과제 따라가기도 벅찹니다.”
이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이해는 해. 그런데 과장이 지금 너무 ‘오늘’만 보고 있어.”
박과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아직 처리하지 못한 메일 목록만 떠올랐다.
며칠 뒤, 예상하지 못한 일이 터졌다.
진행 중이던 과제 하나가 갑자기 중단됐다.
고객사 내부 사정으로 프로젝트 자체가 보류된 것이다.
회의실 공기가 묘하게 가벼웠다.
“그럼… 이 과제는 여기까지인 거죠?”
나사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단은 그렇대.”
박과장이 말했다.
처음 며칠은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야근이 줄었고, 다들 한숨 돌리는 모습이었다.
“요즘 좀 살 것 같아요.”
임대리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여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지나자 팀 안에 묘한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회의도 줄고, 급한 메일도 없었다.
나사원은 자주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임대리는 괜히 문서를 다시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점심시간, 나사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과장님… 혹시 다음에 뭐 하는지 정해진 게 있나요?”
박과장은 대답을 망설였다.
“아직은 없어. 곧 뭐 하나 내려오겠지.”
“아… 네.”
그날 이후, 나사원의 표정이 달라졌다.
집중을 못 하는 날이 늘었고, 퇴근도 빨라졌다.
며칠 뒤, 다른 팀 과장이 박과장에게 슬쩍 말했다.
“요즘 박과장 팀은 좀 한가한가 봐요?
다들 일 없다고 하던데.”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팀 내부뿐 아니라, 밖에서도 그렇게 보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결정타는 임대리의 말이었다.
“과장님, 저… 솔직히 고민이 좀 있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 임대리가 남아서 말했다.
“요즘 팀에서 앞으로 뭘 하는지 감이 안 잡혀서요.
이러다 갑자기 구조조정이라도 있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요.”
박과장은 그제야 깨달았다.
일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방향이 없는 게 문제라는 걸.
그날 저녁, 박과장은 다시 이부장을 찾아갔다.
“부장님, 전에 말씀하신 로드맵… 다시 이야기 좀 해주시죠.”
이부장은 아무 말 없이 웃었다.
“이제 좀 느꼈구나.”
“네. 팀원들이 불안해합니다.
제가 괜히 ‘지금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로드맵이란 게 거창한 게 아니야.
우리가 앞으로 어디쯤 가고 있는지, 나침반 하나 들고 있는 거지.”
그날 이후 박과장은 시간을 쪼개 로드맵을 만들기 시작했다.
확정된 일만 적지 않았다.
가능성, 준비 과제, 학습해야 할 것들을 함께 정리했다.
다음 주 팀 미팅에서 박과장은 말했다.
“이건 확정된 일정은 아니야.
하지만 우리 팀이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갈 거라는 그림이야.”
팀원들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졌다.
나사원은 고개를 끄덕였고, 임대리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팀에는 다시 숨 쉴 공간이 생겼다.
이부장은 회의가 끝난 뒤 박과장에게 말했다.
“기억해. 팀원들은 일이 힘들어서 도망가지 않아.
내가 여기서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도망가는 거야. 리더는 일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불안을 없애주는 사람이야.
그 도구가 바로 로드맵이고. 그래야 팀 전체를 볼 수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