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늘 같았다.
하지만 그날따라 박과장은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팀을 맡은 지도 1년 반.
일정은 늘 빠듯했고, 고객 요청은 예고 없이 들어왔다.
그걸 조율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고 있었다.
노트북 화면을 보며 박과장이 말했다.
“시간 없으니까 핵심만 봅시다.
이슈 있으면 말씀 주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잠깐의 침묵 끝에 임대리가 입을 열었다.
“이번 일정이 조금 걱정됩니다.
고객지원 요청이 추가되면서 테스트 시간이 많이 줄었습니다.”
임대리는 조심스러웠다.
괜히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릴리즈 후에 꽤 고생했거든요.”
박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그 정도로 말할 정도면
임대리가 많이 고민해본 거겠네요.”
“네.”
“그럼 해결 방안도 정리해서
다음 회의 때 팔로업해 주세요.”
말은 부드러웠다.
신뢰를 주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회의는 무난하게 끝났다.
하지만 임대리는 자리로 돌아오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문제를 말했을 뿐인데
왜 일이 하나 더 늘어난 걸까.’
그날 임대리는 늦게까지 남아
일정 조정안과 리스크 정리를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다음엔 그냥 말하지 말자.’
그 이후로 비슷한 장면은 반복됐다.
회의에서 임대리가 리스크를 말하면
박과장은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럼 임대리가 한 번 정리해 보세요.”
“임대리가 제일 잘 알잖아요.”
처음엔 인정받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점점 생각이 달라졌다.
문제를 말하는 순간
업무 목록이 늘어난다는 걸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회의 중
분명히 위험해 보이는 일정이 있었지만
임대리는 입을 다물었다.
회의가 끝난 뒤
나사원과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이거, 나중에 좀 위험할 수도 있어.”
“회의 때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임대리는 씁쓸하게 웃었다.
“말하면 그게 다 내 일이 되잖아.”
그날 이후 나사원도
회의에서 질문을 줄이기 시작했다.
회의는 점점 더 깔끔해졌다.
모두가 “문제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박과장은 생각했다.
‘팀이 안정됐나 보다.’
하지만 릴리즈 직전,
수정 요청이 한꺼번에 터졌고
고객 불만도 늘어났다.
그때 이부장이 박과장을 불렀다.
“요즘 회의에서
문제 제기 잘 나오나?”
“예전보다는 적습니다.”
“왜일까?”
이부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말했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그걸 혼자 떠안게 되면
다음엔 입을 열까?”
그 말에 박과장은
과거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괜히 한마디 했다가
주말까지 일했던 기억.
‘다음엔 가만히 있어야지.’
이부장은 덧붙였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이미 가장 많이 고민한 사람이야.
하지만 그걸 전부 그 사람 몫으로 만들면
팀은 조용해져.
그리고 그 조용함은 위험한 신호야.”
그날 이후 박과장은 회의를 바꿨다.
“걱정되는 점 있으면 이야기해 주세요.
해결은 같이 봅시다.”
임대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테스트 일정이 걱정됩니다.”
박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지적이에요.
이건 팀 이슈입니다.
임대리는 관점만 정리해 주세요.
해결은 나랑 나사원이 나눠서 볼게요.”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나사원이 처음으로 손을 들었다.
“그럼 이 부분은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회의는 길어졌지만
공기는 달라져 있었다.
문제가 많아진 게 아니었다.
원래 있던 문제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회의가 끝난 뒤
임대리가 조용히 말했다.
“아까 말씀해 주셔서…
좀 편했습니다.”
그 말이 박과장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문제를 말한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 구조.
그게 팀을 살리는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문제를 말한 사람에게 일을 얹지 말고, 문제를 팀의 일로 만들어라. 그래야 사람들이 다시 입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