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원 외전
회의 하나가 끝나고 다들 삼삼오오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나사원이 트레이를 들고 우리 쪽 테이블에 앉았다.
“이부장님, 박과장님. 저 어제 친구 만났는데요. 아직 취업 준비 중이거든요.”
임대리가 웃으며 물었다.
“요즘도 힘들지? 어디 지원했대?”
“국내 연구소 몇 군데요.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곳이요. 거기 붙으면 부모님도 엄청 좋아하실 것 같대요.”
박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연구소면 간판은 좋지.”
나사원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근데요… 저도 예전에 거기 최종 후보까지 갔었거든요.”
우리가 동시에 나사원을 봤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어? 그랬어?” 임대리가 눈을 크게 떴다.
“네. 졸업하고 취업 준비할 때요. 지금 회사랑, 그 연구소랑 둘 다 면접까지 갔어요. 솔직히 그때는 연구소 쪽이 더 끌렸죠. 이름값도 있고, 석사·박사들이 모여 있고, 뭔가 ‘전문가 집단’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나사원은 그때를 떠올리듯 잠시 말을 멈췄다.
“주변에서도 다들 거기 가라고 했어요. ‘거기 붙으면 인생 편다’ 이런 말도 들었고요.”
이부장은 조용히 물었다.
“그럼 왜 안 갔어?”
나사원이 웃었다.
“우연히 한 선배를 만났거든요. 졸업한 지 오래된 분이었는데, 지금의 이부장님 정도 연차였어요. 그분이 저한테 그러셨어요. ‘간판 말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봐라’고요.”
박과장이 흥미롭다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무슨 뜻이래?”
“그 연구소는 박사 비율이 거의 대부분이래요. 실제로 면접 보러 갔을 때도, 대기실에 있는 분들이 거의 다 석사 이상이었고요. 그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거긴 연구가 중심이다. 학위가 곧 서열이 될 수 있다. 너처럼 학사 출신에 실무를 빨리 배우고 싶은 애는, 가서 잡다한 일부터 오래 할 수도 있다’고요.”
임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그리고 또 하나. 특정 학교 출신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라인이 생길 수 있다고 했어요.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학벌이 말없이 기준이 되는 조직도 있다고요.”
나사원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때는 솔직히 기분이 좀 상했어요. ‘학사라고 무시받는 건가?’ 싶기도 했고요. 근데 선배가 그러셨어요. ‘네가 연구 자체를 좋아하고, 학위로 계속 가고 싶으면 가도 된다. 근데 네가 하고 싶은 게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우는 실무라면, 네가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인지 꼭 봐라’고요.”
이부장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회사 이름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다.'
박과장이 물었다.
“그래서 여기로 왔다는 거네?”
“네. 면접 때 분위기가 달랐어요. 이부장님이랑 김상무님이 질문하실 때, ‘학점이 왜 이래?’ 이런 게 아니라, ‘고객 대응은 해본 적 있냐’, ‘문제 생기면 어떻게 풀었냐’ 이런 걸 물어보셨어요. 뭔가 사람을 보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임대리가 웃었다.
“우린 일단 굴려보고 키우는 스타일이지.”
“맞아요.” 나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사하고 나서도 느꼈어요. 여기선 박과장님이 박사냐 아니냐 아무도 신경 안 쓰잖아요. 과제 잘 끌고 가면 인정받고, 고객 응대 잘하면 그걸로 평가받고.”
박과장이 웃으며 말했다.
“난 학사야. 대신 욕은 많이 먹었지.”
다들 웃음이 터졌다.
나사원이 다시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저 그 연구소 갔으면 아마 지금처럼 고객사 나가보고, 이슈 정리하고, 회의에서 제 의견 말하는 기회는 못 가졌을 것 같아요. 아직 신입이지만, ‘내가 팀에 필요하다’는 느낌은 받아요. 그게 좋아요.”
이부장은 조용히 말을 보탰다.
“조직은 결국 사람이다. 특히 학위가 대다수인 조직에 들어가면, 학위가 곧 기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네가 거기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나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선배도 그랬어요. ‘네가 평범한 학사라면, 박사들 사이에서 항상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 대신 실무 중심 조직에 가면, 네 실력으로 평가받을 기회가 더 많다’고요.”
임대리가 한마디 덧붙였다.
“신입은 특히 그래. 자존감 깎이는 환경이면 오래 못 버틴다.”
점심을 다 먹고 일어나는 길에, 나사원이 조용히 말했다.
“저는 간판이 아니라, 제가 빨리 성장할 수 있는 곳을 택한 것 같아요. 지금은 그 선택이 맞았다고 생각해요.”
이부장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었다.
신입이지만, 이미 중요한 걸 알고 있었다.
'후배야, 화려한 간판에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조직이 어떤 사람들로 채워져 있고, 무엇을 기준으로 인정하는지 꼭 보아라.
학력이 특별히 뛰어나지 않다면, 학위가 곧 힘이 되는 조직은 너를 키워주기보다 비교하게 만들 수 있다.
네가 실무로 인정받고 싶다면, 사람을 보고 선택해라.
간판보다 분위기, 이름보다 사람을 보고 회사를 선택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