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배치 받은 지 한 달, 나사원 눈빛이 반짝였다.
밤새 박과장이 이끈 고객 이슈를 정리하며 문득 물었다.
“부장님, 이거 제가 요약해서 임원까지 같이 드리면 임팩트 있겠죠?”
이부장은 컵라면 뚜껑을 덮으며 말했다.
“정치는 가끔 필요해. 근데 자신 없으면 칼집에 넣어두는 게 맞다. 칼은 뽑으면 써야 하거든.”
나사원은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보낸 편지함엔 이미 메일이 날아갔다.
제목은 또렷했다.
[긴급] 야간 대응 결과 보고 (주도: 나사원)
참조엔 이름이 잔뜩. 제일 위엔 김상무.
다음 날 아침, 회의실 공기가 묵직했다.
김상무가 자료를 넘기다 고개를 들었다.
“어제 보고, 누가 올렸지?”
나사원이 손을 들었다.
“제가 정리했습니다.”
박과장은 웃었지만 눈가가 굳었고, 임대리는 팔짱을 낀 채 조용히 훑어봤다.
“정리 수고했어.” 김상무가 말을 이었다.
“다만 이런 건 담당이 앞에 서야 해. 공은 팀이랑 나누고.”
회의가 끝나자 임대리가 장난스럽게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초반에 정치 맛 보려면 더 얄쌍해야 해. 근데 굳이 지금? 다 보여.”
복도 끝, 커피머신 앞.
이부장이 종이컵을 건네며 말했다.
“나사원, 네가 똑똑한 거 알아. 근데 회사엔 눈 많은 사람, 그런 일에 재능 있는 사람도 많다.
어설프게 머리 쓰면 티 난다.
자신 없으면 ‘시키는 일 잘하고 뒤통수 안 치는 사람’으로 먼저 이름 팔아. 그게 제일 빨리 간다.”
잠시 고개를 숙인 나사원이 작게 말했다.
“욕심이 앞섰네요. 팀 채널부터 공유하고, 보고는 박과장님 이름으로 정리하겠습니다.”
그날 오후, 나사원은 팀 메신저에 올렸다.
“야간 대응 요약입니다. 총괄: 박과장님, 상세 로그 첨부.”
회신으로 박과장은 엄지 이모티콘 하나.
임대리는 “이제 보자, 우리 쿨가이”라며 웃는 이모지 두 개.
김상무는 “좋아. 기본을 지키면 기회가 온다.”
그 뒤로 나사원은 티 안 나게 느리게, 대신 꾸준히 움직였다.
회의 땐 말보다 메모.
보고서엔 꼭 담당자 이름 먼저.
공은 밀고, 실수는 본인이 받았다.
어느 날, 김상무가 퇴근길에 말했다.
“나사원, 너는 믿음이 간다. 그래서 네가 하는 말은 힘이 있어.”
이부장은 옆에서 보탰다.
“정치를 모르는 척할 필요는 없어. 다만 네 칼날을 믿을 때까지는 꺼내지 않는 거야.
그 사이, 신뢰가 네 방패가 돼 줄 테니.”
회사에서 정치는 가끔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 없을 땐 어설프게 머리 쓰지 마라.
선배와 고수들 눈은 정확하다.
확신이 생길 때까지는
‘시키는 일 잘하고 뒤통수 안 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먼저 쌓아라.
그 신뢰가 결국 가장 멀리 데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