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명함이 없지 놀았냐

삼중고에 놓여 있는 여성들

by 그럴 때도 있지
명함의 명암 @외도동

엄마들이 퇴근 할 때 이제 집으로 다시 출근한다는 자조섞인 말을 할 때가 있다.


일은 곧 돈이라는 자본의 논리에서 노동은 상품 생산에 기여하거나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활동으로 정의된다. 그런 의미에서 돌봄 노동은 일이라고 인정되지 못한다.


또한 노동자 이전에 ‘여성’인, 특히 결혼을 한 여성들은 직장에서의 노동과 가사 노동이라는 이중고에 처해 있다.


노동의 재생산(인간을 돌보고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노동) 없이는 자본주의 자체가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가부장제적 사고방식에서는 이런 재생산 노동을 여성의 본능과 역할로 당연시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구조적으로 외면한다. 사랑이나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헌신처럼 포장되기도 한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라는 제목을 읽을 때부터 자신의 노동을 일로 인정받지 못한 여성들의 수많은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더불어 인정해주지 않는 대상은 사회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 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부장제도에서 자라온 여성은 돌봄의 영역을아직 여성의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또한 돌봄의 영역에서 수혜자로 자라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돌봄의 영역을 제외하고서라도 임금차별, 유리천장 등 노동자이기 이전에 여성인 이유로 공정하지 못한 대우들을 받아야 했던 수많은 여성의 현실이 떠오르기도 했다.


예상했던대로 이 책은 많은 딸에게 ‘그냥 우리 집 일’로여겨지던 것들을 사회적 차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으며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와 인정받지 못할 수 밖에 없었던 가부장제 사고방식, 돌봄 노동에 대한 이해 부족 등, 관습적으로 내려오던 의식과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다루었다.


또한 시대가 바뀌어 노동의 의미를 다시 쓰고 있다지만 아직까지도 현장에서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가정을 이끌어 온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엄마들의 노동은 잘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인 경우도 많다 @환해장성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고 있는 것일까?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자기 돌봄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경력단절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엄마들은 대게 어른의 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 즉, 아이가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생인 학령전기 또는 학령기 시기였다. 프로그램 진행이 가능한 시간은 주로 오전(아이가 등원을 한 이후)이었다. 그마저도 감기가 도는 환절기에는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아이들이 방학인 시즌에는 수업조차 잠시 쉬어갔다.

엄마들은 경력 단절에 이어 시간 단절까지도 함께 겪고 있었다. 아이와 가족을 위한 시간을 쓰고 난 후의 시간이 엄마의 시간이 되었다. 때문에 엄마들의 시간은 새벽에 쏠려 있기도 하다. 자기의 시간. 즉, 자는 시간을 쪼개 자신의 시간들로 채우고 있는 엄마들을 보게 되니 엄마에게 명함이 있다면 한 장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그나마 자신을 위해 쓰는 그 시간을 엄마들은 행복해 했다. 하지만 그것이 노동의 대가라고 하기에는 그 말이 무색해 보였다.


지금 세대는. 스스로를 돌보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진 세대이기에 나도 돌봐야하고 가족도 돌봐야 하고 일도해야하는 어쩌면 삼중고에 놓여 있다.

모든이에게 쉬어갈 권리는 필요하다 @고내포구

아직까지도 남편들은 양육과 가사를 도와준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성들조차 노동은 곧 재화를 벌어들이는 일만이라고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스스로 자신이 경력단절을 겪을 경우 일을 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일과 가사. 공부 등으로 오롯한 나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잦게 있다. 아이 돌봄 선생님은 매칭이 안되고 남편은 주말에도 일을 나가야 하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 친구 엄마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혹여 그녀의 노동을 내가 무급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미안함이 드는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을 남편은 하고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를 맡기는 일 또한 여성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집에서 만난 여성들은 명함의 필요성을 느끼지못했다. 그간 해오던 일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의미로 나에게는 더 많은 가능성들이 있는데 하나의 명함으로 나를 머무르게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명함을 만들어야 하나 생각을 한다는 55세 이선옥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성들은 하나의 명함으로 자신을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기도 했다. 더불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명함 없이도 어떻게 하면 여성들의 노동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여성 스스로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일에 대한 개념 정리와 확신이 필요하다. 또한 돌봄 노동과 필수 노동의 수혜자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들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여성의 노동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가 쓴 「보이지 않는 여자들」에서 데이터 공백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특히 젠더 데이터 공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는 그것이 대게 악의적이지도 심지어 고의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고, 여자들은 아예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중 무념이기도 하다. 우리가 인간이라 통칭하는 것은 남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시간으로 가득차있는 역사 @포도 뮤지엄


남자들의 기준에 맞춰진 사무실 적정온도, 피아노 건반 넓이, 스마트폰의 크기, 자동차 좌석 및 안전벨트가 남성 체격 기준으로 만들어 졌다는 점 외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경우. 심지어 알지 못하는 경우까지 남자가 디폴트값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 세상의 반은 여자. 기본적인 안전까지 위협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데이터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데이터 공백이 사라지면 그에 따라 발생했던 문제점들을 공론화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일이다.또한 노동과 일에 대한, 특히 여성이 보조자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내 딸이. 다음 세대가. 같은 이유로 경력을 단절하며까지 내 시간을 써야 하는 이유를 찾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하겠다.


지금 내가 가지는 명함은 수많은 여성들이. 나의 어머니가. 나의 할머니가 겪어내고 감내해 왔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더불어 여성의 노동이 명함에 적지 않아도 전문적인 일로 인정받는 날이 오길 바란다.


#가부장제#돌봄#노동#엄마#우리가명함이없지일을안했냐#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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