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영역은 지키되 함께하는 영역에서는 자연스레 돕는
“너네 옆집에 살고 싶다”라는 로켓트리의 곡이 있다.
가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싶다는 내용을 담았다.
제목 그대로 나는 그런 관계의 삶을 지향했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서로의 삶을 존중한 채 가끔 기대어도 되는 거리에 있고 싶다는 마음.
생각해보니 내 첫 제주 생활이 그랬다.나의 첫 독립생활은 제주의 셰어하우스에서였다.세 달을 꾸준히 살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다시 내려온 제주.
그렇게 시작한 세 달은 어느새 일 년을 넘기며 결국 제주에 터를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셰어하우스는 30평 남짓. 방은 나누어 쓰고 거실과 부엌은 함께 쓰는 구조였다.
제주에 오자마자 일을 구한 나는 여느 여행객들과는 조금 달랐다.그 집의 대부분은 여행 일정에 맞춰 잠시 머무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입주자들이 바뀔 때마다 집 안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렇지 않은 날에는. 내 방으로 들어와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휴무날인 경우, 제주의 곳곳을 알고 싶어 투어를 다녔다.
세 방의 입주자들이 합이 잘 맞는 일은 좀처럼 드물었다.
그러다 어느 날, 동갑내기 친구와 카페에서 일하던 동생 한 명이 나머지 두 방에 들어왔다. 오가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법 말이 통했다.
우리는 거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밥을 해 먹고 늦은 저녁이 되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쉬는 날에는 같이 제주를 투어했고 장을 봐서 서로의 끼니를 함께 챙기기도 했다.
귀가가 늦어지는 날이면 안부를 묻고 마중과 배웅까지 마다 하지 않았다.
아침이면 문 여닫는 소리와 부엌에서 나는 그릇 소리만으로도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그걸로도 충분히 반갑고 든든했다.
연인들처럼 헤어짐을 아쉬워할 필요도 없었다.우리는 늘 같은 집으로 돌아왔으니까.
각자의 영역은 지키되 함께하는 영역에서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도왔다. 크게 바라지 않았고 크게 실망할 일도 없었다.
제주와 여행이라는 느슨한 공통점으로 모인 사이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공간과 시간을 나누던 시절.
결혼 생활도 그럴 수 있었을까.
서로를 공유 하는 것이 아닌 공존하는.
느슨한 경계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너무 가깝게도 아주 멀게도 아닌.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응원하며 따로 또 같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그 시절을 조금 더 붙잡아두고 그런 관계가 가능한 곳과 사람을 더 곁에 두었을지 모를 일이다.
장미와 수국이 피는 계절이 오면 그 집과 그때의 친구들과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