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래 봐요

붙잡지 않아도 곁에 머무는 관계

by 그럴 때도 있지
서로에게 물드는 관계 @한라수목원


우리 오래 봐요.


아무에게나 건네는 말은 아니다. 오래 보고 싶다는건 아끼고 싶다는 이야기다. 쉽게 닳지 않을 마음으로 천천히 곁에 두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만나, 내가 너무 떠들었다며 미안해할 때,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간 밀린 이야기들 얼마나 많겠어요.” 라며 끝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괜찮다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그 시간을 가만히 받아주는 사람.


내 생활의 일부를 떼어 안부 전하는 날이면 나머지 이야기가 궁금하니 들려달라는 녀석.


서울 나들이 계획 있으면 부담없이 연락주라며 나의 부담도 본인이 가져가 버린다. 정말 바쁜 틈에도 잠시라도 짬을 내어 얼굴을 보여준다. 요즘 청년들은 이런 곳에 가더라며 새로운 곳 안내도 마다 하지 않는다. 만나고 헤어질 때면 언제일지 모르는 다음을 기약하기도 한다.

어느날 문득, 우리 동네로 찾아와 근처 공원을 같이 걷고 제주로 여행 오는 날, “스케쥴을 빼시죠”라고 당당히 말하는 녀석. 가끔씩 찾아드는 녀석의 과감함이 좋았다. 그런 문득이 여러 해 쌓여 붙잡지 않아도 곁에 머무는 관계가 되었다.


자신의 필요를 에둘러 말하지 않고 정확하게 요구하고 표현하는 그 솔직함이 고마웠다. 쉽지 않은 일이다.


자주 본다고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많이 안다고 편안한 사이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자리를 존중할 때 관계는 오래 간다.


건강하다는 것은 자신의 경계도 상대에 대한 경계도 잘 세운다는 이야기. 벽을 세운다는 것이 아니라 느슨히 언제든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 올 수 있는 틈을 둔다는 이야기.


돌담 사이로 바람이 넘나들고 밭일 하는 삼촌도 담긴다 @우도

제주의 돌담 사이에 구멍이 있어 바람이 잘 넘나들어 넘어지지 않는 것 처럼. 자신만의 돌담을 잘 쌓았다는 이야기이다.


제주의 돌담은 아무나 쌓지 못한다. 돌챙이라 해서 돌과 돌 사이를 무너지지 않게 쌓는 전문가들이 있어야 가능하다.시간과 정성, 기술이 함께 필요한 작업이다.

작업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하리만큼 각각의 모양이 있는 돌들이 마치 제자리인 듯 놓인다.


어설프게 돌담을 쌓았다간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제주 바람은 언제고 불 수 있기에 더 위험하다.

밭담이 있어 서로의 경계를 알 수 있다 @하도리

관계라고 다를 바 있을까. 언제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으키기도 해야하고 그러다 인연이 아닌 것 같으면 놓아 버리기도 해야한다.


그런 점에서 관계에도 바람이 드나드는 틈이 있어야 한다. 그 틈으로 바람도 햇빛도 오간다. 그래야 마음에 남는 것들이 없이 천천히 흘려 보낼 수 있다.


단단한 관계는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것. 그것이 서로에 대한 신뢰이다.


무너져도 다시 쌓으면 그뿐이고, 그만한 신뢰는 있으니, 그저 우리는 오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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