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자주 남는 장사였음이 분명하다.
셈이 빠르지 않다. 관계든 금전이든.
금전적으로 넉넉하진 않았지만 손 벌린적 없었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지냈다. 크게 부족하다 여긴 적 없거니와 물욕이 있는 편은 아니여서 씀씀이를 조절하면 되는 일이었다.
국민 주식이라 일컫는 삼성 주식조차 보유하고 있지 않고 정기예금에 돈을 넣어 놓고 매년 만기일에 찾아가 일년씩 연장하는 사람이다. 돈버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도 아니기에 돈에 욕심이 아주 많지도 않다.
반지하에서 연탄을 떼고 공동 화장실을 쓰며 유년기를 보냈다. 대문은 주인집과 함께 쓰는 문이었고 집 문을 열어도 맞은편 담이 높아 석양이 드는 날은 손에 꼽았다.
집을 넓혀 가고 싶다던 엄마의 꿈과 달리 아버지 봉제공장이 기울며 가게 한켠 방이 있는 집으로 옮겼다. 세간살이를 줄여야 했지만 방 안에 작은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이 났던 나였다.
공장을 살려보겠다고 끝까지 일을 놓지 않았던 부모 덕에 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 부터 가게를 부모 대신 보는 일이 잦았다. 인형의 대중소 가격을 외웠고 포장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사리 손으로 포장도 했더랬다.
같은 자리에서 채소장사, 과일장사, 팬시점, 옷가게 다양하게 업종을 바꿔가며 하는 동안 나는 우리 상황을 부끄러워 한적이 없었다. 때문인지 우리집은 늘 오픈형 사랑방이었고 친구들과 동네 주민들이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장마가 시작되면 하수 시설이 부족해 화장실 바닥에서부터 물이 차올라 물을 퍼내는 일도 자연스러웠던 시절이다.
고 3이 되어서야 그 생활을 접을 수 있었지만 그 시절은 나에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사는 환경에 불평이 없다. 웬만한 불편은 감수 하면서 사는게 익숙하기도 하고 이 정도면 부족함 없다 여겨서인지 크게 더한 것들을 위해 욕심 부리지도 않았다. 조금 손해 보는 날이 있더라도 이득 봤던 날이 있었지하며 크게 마음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고만고만하게 살고 있는건가 싶기도 한.
관계에서도 셈을 세지 않았기에 한번 마음 낸 것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았다. 내가 즐거워 낸 시간과 돈은 아쉬운 적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선 상대에게 늘 최선의 것을 하려고 했다. 때문에 관계가 다 한 후에도 후회가 적었다. 낼 수 있는 마음을 다해 냈던 경험치 덕이다.
살면서 셈이 빠른 사람들을 본다. 셈을 세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나라서 주변에서 일러두면 아. 그렇구나 하는 정도. 셈이 빠른 사람들은 준 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잘 받아내었다.
한 때 나도 내가 받은 것이 부담스러워 갚아야 할 것으로 기억해 두기도 했다. 하지만 아낌없이 주는 사랑과 다정에는 나도 속수무책. 살면서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순간은 자주 찾아 들었다. 하지만 나의 선의가 돌고 돌아 온다는 말을 들은 후 부터는 덜 미안해 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내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정말 작은 것들을 실천했다. 물론 댓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의다. 예를 들면 아이를 안고 주차장까지 비를 맞는 아이 엄마를 보면 우산을 씌워주는 것과 같은 아주 소소한 마음 내기이다.
크게 마음을 쓰는 일이 있다 한들, 내가 원해 냈던 일이니 내 시간과 공을 쓰는 일을 아까워 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고마운 사람들이 늘어난다.
계산하며 살지 않았지만 자주 남는 장사였음은 분명하다.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나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다. 아마도 나는 생의 마지막까지 셈이 빠르지는 않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