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깍두기가 되어도 좋은 새해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 할 수 있음을

by 그럴 때도 있지
윷놀이에도 빽도라는 규칙이 있어 누구든 우승에서 배제 될 수 없다 @한탄강 걷기 후 윷놀이 한판

“오늘은 내가 깍두기“


동네에서 또래 친구들과 놀 때면 누군가는 깍두기가 되었다. 이미 놀이 인원이 다 찼거나, 어리거나, 몸이 불편한 친구들이 그 자리를 맡았다. 남동생과 함께 놀아야 하는 일이 잦았던 나. 또래와 놀 때면 남동생이 깍두기를 하거나, 자주 깍두기를 하는 게 속상한 날이 있으면 내가 나서서 “오늘은 내가 깍두기 할게”라고 자처하기도 했다.


깍두기라는 말에는 묘한 합의가 담겨 있었다.

너는 오늘 완벽히 해내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 그래도 여기 함께 있어도 된다는 것. 놀이를 함께 한다는데 의의를 둔다는 점에서, 어느 날은 오히려 깍두기인 자리가 편하기도 했다. 승패에 관심 두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는 배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양극화로 인한 혐오와 갈등, 편 가르기. 공통점보다 차이점을 먼저 찾고, 수많은 가능성을 지운 채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는 오늘. 배제가 일상화된 풍경을 본다.




이는 <오징어 게임 2>에 등장하는 ‘둥글게 둥글게’ 게임에서 더 확연히 드러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 진행자가 외치는 숫자만큼 모이지 못하면 탈락하는 게임. 황동혁 감독은 이 놀이를 두고 누군가를 끌어안아야 살 수도, 누군가를 배제해야 살 수도 있는 구조라 설명했다.


누군가를 끌어안고 함께하자는 깍두기의 규칙과는 다르다. 어쩌면 오늘의 일상을 더 닮은 게임일지도 모른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고, 원하는 사람은 많으니 누군가는 떨어져야 내가 올라갈 수 있는 구조. 배제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시스템이 되는 사회. 내편과 네편을 나누어 편먹고 그 편마저 없는 사람들은 배제해 버리는.


우리는 어느새 ‘함께 놀기 위한 규칙’보다 ‘살아남기 위한 규칙’을 먼저 배우게 되었다.




그렇다고 시스템만을 탓할 수 없다. 적어도 우리는 깍두기가 허용되는 문화 속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문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배제가 아주 없는 삶이 아니더라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내가 몸담은 협동조합에는 ‘쪼잔토크’라는 시간이 있다. 말하기 치사하고 사소하지만 쌓이면 커지는 이야기들. “나만 쓰레기야” 같은 과격한 말로 시작해도, 누구도 그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어, 맞아. 나도 그래.”

“그럴 수 있어.”

“그건 좀 반성해.”

그렇게 웃고, 인정하고, 때로는 짚어준다.


변명 없이 실수도 꺼내 놓고 마음의 찌꺼기를 털어낸다. 안전하다는 것, 신뢰한다는 것은 그런 일인지도 모른다.

평가 대신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 때론 비를 맞도록 내버려 두는 것. 비에 젖고 빗물이 뚝뚝 떨어진 채로 걸어와도 따스한 온기를 내어 주겠다는 것. 포용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배제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그로 인해 안전함을 보장받는 다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생각들을 모아 더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가지는 일들이야 말로 우리가 성장하고 함께 가는데 필요한 일들이다. 그것은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함께 하겠다는 포용의 태도와도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함께 살아 간다는 것은

누구나 깍두기가 될 수 있고

되어도 좋다는 것을 의미 한다.


새해가 되는 오늘,

손수 빚은 만둣국에 깍두기를 먹으며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본다.

만두는 다양한 재료가 담긴 음식 중 하나. @외도동


작가의 이전글계산하며 살지 않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