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 한다는 것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산토끼를 알고 지낸 시간 동안, 나는 산토끼를 의인화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녀석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고, 반려동물처럼 대하지도 않았으며, 거의 만지지 않았다. 우리 관계의 조건은 산토끼가 정했다.”
— 클로이 달튼, 《산토끼 키우기》
팬데믹 시절 우연히 만난 산토끼와
서로를 조심스레 관찰하며
다른 종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기록한 이야기다.
산토끼를 의인화하지 않고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는 것은
저자 입장에서
어떤 개입이나 판단을 보류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명명한다는 것은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고,
때로는
내 방식으로 규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관찰한다는 것은
가만히,
일어나는 현상을 바라보는 일.
그래서 관찰은
기다림과 닮아 있다.
서두르지 않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그저 드러날 때까지 두는 마음.
관찰과 기다림은 관계를 맺을 때 유용하다.
“내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 말은 대화 도중
아이에게 하기도 하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듣기도 한다.
이 말을 들을 때면
안심이 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너의 이야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에게 도착한 거니.
나는 네가 어떻게 그 생각에 이르게 되었는지 궁금해.
내 생각은 잠시 놓아둘게.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로 들리기 때문이다.
아,
내 이야기가 정말 궁금한 거구나.
듣고 싶은 마음이 먼저인 거구나.
그럴 때야 비로소
상대가 나를
해석하려는 대상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만나려 한다는 걸 느낀다.
어쩌면
관찰과 공존도
그런 태도에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먼저 궁금해하는 마음.
규정하기보다
그대로 두는 마음.
존재를
이름 붙이기 전에
한 번 더 바라보는 마음.
그런 면에서
당신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진다.
부분만 보고 전체를 나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당신의 경험치로 나를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속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묻지 않은 것인지.
애초에 궁금하지도 않았는지…
반대로,
나 또한
당신을 내 기준으로 규정화시킨 건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관찰한다는 것.
그대로 본다는 것이,
공존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