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오온이 공하다_나라는 존재는 인연따라 변한다.
“사대오온이 공하다”는 말은
반야심경과 대승불교의 공(空) 사상을 요약한 표현이다.
이 말의 의미는, 나라는 존재가 사대(땅·물·불·바람으로 이루어진 몸)와 오온(색·수·상·행·식으로 이루어진 마음과 경험)의 결합으로 잠시 드러난 것일 뿐, 그 안에변하지 않는 고정된 실체나 영원한 ‘나’는 없다는 뜻이다.
몸도 마음도 인연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는 과정이므로, 붙잡을 수 있는 본질이라기보다 흐름에 가깝다. 이를 ‘공(空)’이라 하며, 허무가 아니라 집착할 실체가 없음을 아는 지혜, 그래서 덜 매이고 더 자유로워지라는 통찰을 담고 있다.
나는 관계·경험·환경 속에서 계속 변하며 만들어지는 존재다. 어느 것도 고정된 실체 없이 변한다는 말은, 결국 ‘집착을 놓으라’는 말과도 같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에너지의 흐름은 바뀐다. 서로의 에너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주변 사람들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라고 할 것 없는 나에 집착하기 시작할 때, 오히려 ‘나다운 것’을 찾게 된다.
그러나 나답다는 것은 정해진 성질이 아니라, 매 순간의 선택과 관계, 가치와 태도 속에서 지금 이 순간 드러나는 나를 뜻한다.
‘지금의 나로 살기’라는 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나는 또 흔들리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놓여지고 놓아지는 인연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끔 ‘-답게’라는 말이 조심스럽다.
우리안에 수 많은 내가 있다는 노래가 비단 노랫말 뿐은 아닌 것이다.
엄마답게, 아빠답게,
학생답게, 어른답게.
그 말들은 종종
보이지 않는 기준과 역할을 먼저 꺼내 놓고
그 안에 나를 맞추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어느 날은 누군가의 딸이었다가,
어느 순간은 엄마가 되고,
또 어떤 자리에서는 학생이 된다.
역할은 바뀌고, 관계는 달라지고,
그때마다 드러나는 나의 얼굴도 달라진다.
그 어느 하나만이
진짜 나일 수는 없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규정하지 않고,
지금의 역할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 사실을 기억하는 일만으로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정해진 답 대신
흐르는 나로 살아도 괜찮겠다고,
그때 그때의 나로 지내는 것 뿐이라고,
그렇게 흐름에 나를 내맡겨 본다.
한번도 제자리였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