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오늘 너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내뱉고야…

돌봄의 시작에 나돌봄이 있다.

by 그럴 때도 있지
새벽 러닝하러 가는 길.나를 돌보는 시간 @외도동

엄마는,

오늘 너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뱉고야 말았다.

얼마나 모순이던가.

엄마가. 그것도 여덟 살 난 딸아이에게 할 말이던가.


하지만, 일정 부분은 진심이기도 했다.


2025년의 추석은 대체공휴일과 국가공휴일이 절묘하게 맞물려 긴 연휴가 되었다.


제주에 살고 있는 나는,

밥벌이를 위해 여전히 움직여야 했다.

승마장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명절은 대목이었다.


결혼한 지 여덟 해.

그동안 명절은 언제나

아이와 나, 둘이 보내는 날이 되었다.


안내소에서 근무할 때는 교대근무 덕에 명절이 그저

양가 부모님께 보낼 선물을 고르는 날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마저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안내소로 데리고 출근하곤 했다.


이제는 안내소를 나왔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가친척들이 모두 육지에 있는 터라

아이의 돌봄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나는 내가 하는 돌봄 노동이 자주, 버겁다.

요리를 즐기는 것도, 아이를 돌보는 것도

나에겐 내가 가진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일이다.


7일이나 되는 긴 연휴를 하루하루 세어가며

아이와 갈 전시회와 나들이를 계획해야 하는 내 처지가 어느 순간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명절 내내 일해 받은 돈은 남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내 노동의 비용은, 내 감정의 값어치는

그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연휴 내내 끼니를 걱정하고,

아이와의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를 고민했다.

아이가 잘 따라주면

그나마 에너지를 덜 쓸 수 있을 텐데,

이제는 주관이 생기면서

설득하고 맞춰주는 일이 더 늘었다.


즐겁고 여유로운, 마음만은 편한 삶을 꿈꾸던

나의 가족관은 오래전에 깨져버렸다.


남편은 잘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혼자 살 때는 번 돈을 모아 여행을 다녔다던 그였지만,

결혼 후에는 이렇다 할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하물며 나는 완전전치태반으로

하혈 위험이 있었던 탓에

그나마 가려던 신혼여행마저 포기했다.


이번 명절은 유난히 길었다.

누군가는 가족과 해외로,

누군가는 호텔을 잡아 호캉스를 즐겼다.


나는 그저, 그럴 여유까진 바라지 않아도

남편이 일하는 동안 나의 돌봄 노동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함이 서운했다.


돌봄이 일상이 된 사람에게 긴 연휴는 쉼이 아니다.

그저 돌봄의 시간이 길어질 뿐이다.

잘 버텨주길 바라는건 비단 나의 마음 뿐만은 아닐테지 @고내리 무인카페 산책

나는 연휴가 끝나기만을 손꼽았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한 아이의 엄마로서 미안해졌다.


결국, 아침에 터지고야 말았다.

무력한 아이에게 쏟아진 화살.

내 안에서 올라온 분노가 내 것이었음에도,

그 화살을 아이에게 날리고 말았다.


아이가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나는 설득하다 지쳐버렸다.

“네 마음대로 살아. 산다는 건,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아이가 이해하기엔 벅찬 말을 마구 쏟아내다

결국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빠 따라가.

엄마는 오늘 너를 보고 싶지 않아.”


무력한 아이는 내 눈치만 보다가 아빠를 따라 나섰다.


아이가 떠난 후, 두 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 화가 내 것이었는데,

그 화를 아이에게 퍼부었다는 죄책감과

나는 이 돌봄 노동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부딪히며 내 안에서 스파크를 일으켰다.


일단은,

그런 내 상태를 스스로 이해해주기로 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주기로 했다.


돌봄 노동의 끝은 어디를 향하는 걸까.

혹여, 다 두고 떠나는 결정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마저 스쳤다.


괜히 엄마했다 싶은 순간은 잦다.


허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날아오는 화살을 뽑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을 터.


그래서 일단,

아이가 돌아오면 사과해야겠다.

그리고, 나도 나를 안아줘야겠다.


오늘은 그저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할 만큼

힘들었던 나를

조금 덜 미워하기로 한다.


나는 잠시 아이 돌봄을 내려놓으며,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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