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내기보다 오래 이어가는 쪽을 택한다.

사람 쉽게 안 변한다지

by 그럴 때도 있지

비워내 가버워진 온몸으로 빛을 받아들인다 @용수포구


명절에 기름진 음식을 급히, 잔뜩 먹은 탓인지 탈이 났다. 그제와 어제 꼬박 하루를 거의 굶었음에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오늘 하루를 조금 더해 속을 거의 비워냈다. 속을 채워 넣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하다.


이렇게 오래 체기가 가라앉지 않는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굶어도 배가 고프지 않은 것도 처음이다. 나이가 들수록 몸에서 오는 신호들은 제법 빨랐고 회복 속도는 더뎠다.

오늘에서야 어딘가 맺혀 있던 덩어리가 말끔히 내려간 듯해 속이 꽤나 편해졌다.


뭐든 한 번쯤은 깨끗하게 비워내는 시기가 필요한 걸까. 슬며시 내려놓지 못하니 이렇게 억지로라도 내려놓게 되는 순간이 찾아드는 거겠지.


오늘은 가만가만, 그냥 편히 일기장에 쓰듯 주절거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간 써놓은 글들을 보니 어딘가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힘을 빼는 날을 가지고 싶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주가 되었다.


매일매일 글을 써보자 했던 마음으로 시작했다. 늘 대단한 것을 품고 시작하는 편은 아니기도 하고 그나마 자신있는건 꾸준하다는 생각에 성실을 발판으로 소소히 일상의 생각들을 담고 싶었다.

어쩌면 쌓인 것들을 흘려보내고 싶어 쓰기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다독이며 차곡차곡 정돈해 보내는 일, 생각의 길을 천천히 짚어보는 일로 말이다.


매일 써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매일 쓰고 싶다에서 매일 써야 한다로 바뀌니 매일이 시간과의 다툼이 되기도 했다. 이 작업을 쉼 없이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존경이 생긴다.


초고를 쓰는 시간보다 퇴고에 더 많은 힘이 들어가다 보니, 발행 버튼을 누르고도 다시 고치고 싶은 마음이 남았다. 대단한 필력도, 번뜩이는 감성도 없는 글을 계속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게다가 올해는 잔병치레가 잦아, 하고 싶은 일들 앞에서조차 에너지를 끌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몸을 움직이는 사주라지만, 도리가 있겠는가. 올해와 내년 사이 큰 변화가 있을 거라는 말을 떠올리며, 인생에도 한 번씩 꺾였다가 다시 피는 마디가 있다면 지금이 그 시기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길은 계속되니 가볼 수 밖에 @닭머르

나는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이다. 사람과 연결되고,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는 일에서 힘을 얻는다. 글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혼자 쓰지만, 결국 관계 안에서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아니다.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그러니 잘해내기보다 오래 이어가는 쪽을 택해보려 한다. 사람 쉽게 안 변하니.

그저 여전하고 꾸준한 것들은 언젠가 빛을 본다는 나만의 신념을 잃지 않고 가 보련다.


며칠간 답답하던 속이 비워지고 나니 한결 살 만하다.


작가의 이전글나를 깨는 순간,한결 더 자연스러운 나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