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 선다.
올해는 유독 잔병치레가 잦다. 감기에 장염까지. 한 달에 한 번쯤은 오래 앓고 나서야 지나간다.
긴장 속에서 마음을 깊게 쓰던 일들이 하나둘 매듭지어지면, 기다렸다는 듯 몸이 반응한다. 무언가에 한번 몰입하면 지독하리만치 예민해지는 내 성향 탓이다. 하나를 제대로 끝내야만 다음을 도모하는 성미. 그 ‘제대로’ 해내고 싶은 욕심이야말로 내 날것의 모습이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그것은 오직 나만 아는 애씀이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가끔 멈춰 선다고 한다. 말이 너무 빨리 달려 영혼이 따라오지 못했을까 봐, 잠시 서서 영혼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내 마음은 늘 분주했다. 잠을 미루고 몰입하며 달리는 동안, 뒤처진 내 영혼을 챙길 겨를이 없었다. 그 사이 사람들이 무심히 던진 따가운 말들은 몸 어딘가에 조용히 박혔다. 제때 뽑아내지 못한 가시들은 몸속에 남아, 독처럼 서서히 퍼졌는지도 모른다.
나를 이미 잘 안다는 판단이 타인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올 때 나는 서서히 말을 줄인다. 미워하는 마음을 키우기보다 침묵을 택한다.
나 역시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의도치 않은 생채기를 내는 불완전한 인간임을 알기에, 그저 겸손해지기로 마음먹는다.
뱉어야 할 말을 삼킨 적이 여러 번이다. 상대의 말이 다 수긍이 가고 다 맞다 여겨서는 아니다. 상대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떤지, 그 말들 중에서 내가 받아들일 것과 흘려보낼 것은 무엇인지. 그 침묵 속에서 나는 타인의 시선을 빌려 나를 정리한다.
나에게 그 시간은 가장 치열하고 정직한 자기 성찰의 시간이다.
다 잊은 듯 지내다가도 예상치 못한 순간, 가시에 다시 찔리면 오래전 박혀 있던 가시들까지 함께 욱신거리며 고개를 든다. 이쯤 되면 체념에 가까워진다. 일일이 반응하다 무너져 내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는지 알기 때문이다. 상대는 자신의 판단을 거둘 생각이 없어 보이고, 나는 그저 관계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다. 그것은 포기이면서 동시에,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다. 내안의 가시를 뽑아내는 과정이다.
나만큼 나를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은 없음을 자주 실감한다. 알아달라고 타인에게 요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오늘, 나는 잠시 멈춰 선다.
내 영혼이 나를 다시 따라잡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