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이 나를 견딜 수 있다.

오죽하면 네가 그랬겠니

by 그럴 때도 있지
기다리면 언제든 찾아오는 계절, 봄 @애월고등학교

나만이 나를 견딜 수 있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이다.


가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처절한 찌질함들을 고백할 때가 있다.

“나 정말 이런 짓까지 해봤어”라고 털어놓으면,

정작 듣는 이들은 “오죽했으면 그랬겠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곤 한다. 그렇다. 누구나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저마다의 못난 구석 하나쯤은 품고 사는 법이다.


‘견딘다’는 표현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돌아보면 인생의 7할은 견디고, 3할은 흘려보내며 살아왔다. 이제서야 리듬을 타듯 사는 일이 순리임을 알지만, 자주 잊는다.


나조차도 나를 견디기 벅찰 때가 있는데, 타인의 삶을 쉽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나 같았으면’이라는 표현을 조심한다.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을 수 없고, 각자의 인생은 저마다의 시간과 경험 위에 놓여 있는 고유의 영역이니까. 살아온 역사와 지금의 상황에 따라 각자가 감당 가능한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살아보니’라는 말조차, 어쩌면 스스로에게만 겨우 허락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른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열어두지 않고서는 끊임없이 변하는 이 세계를 온전히 만날 수 없다. 무언가를 더 알아갈수록,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떤 세계는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끝내 이해할 수 없다. 그럴 때는 그 세계 또한 그 자체로 존재할 이유가 있었을테니 내 이해를 거둔다.


산다는 건,

나만이 나를 견디는 일에서 시작해, 끝내 나와 다른 세계들을 그대로 두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죽하면 네가 그랬겠니”라는 말은 내 세계가 잠시 이해받은 것 같아 위안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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