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흘려보낸다는 것의 의미
안식년을 맞이한 어느 사제의 화두는 ‘인간에게 희망이 있는가’였다. 그 질문은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희망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처럼 들렸다.
빅터 프랭클은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희망의 잔인한 이면을 서술한다. 나치의 강제 수용소 안에서 막연한 희망을 품었던 이들은 가장 먼저 무너졌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자유를 찾으리라 굳게 믿었던 이들은, 약속된 날이 지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 삶을 지탱하던 마지막 끈을 놓아버렸다.
그래서 그는 강조한다. 사람을 끝내 살게 하는 것은 낙관적 희망이 아니라, 어떤 극한의 상황에서도 찾아내고야 마는 ‘단 하나의 의미'라고 말이다.
사제의 질문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향했다면,
나의 시선은 '인간이 품은 희망'에 머문다.
인생은 고해다.
고통과 허무의 이면에서 문득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 서로의 삶에 조화롭게 스며들며 온기를 나누는 일. 내게는 거창한 사명이나 대단한 희망 없이, 무엇을 바라는 기대조차 내려놓은 채 그저 오늘 하루를 잘 흘려보내는 것이 삶의 의미라면 의미일지 모른다.
그렇게 살다가 동백꽃의 거름이 되고, 바람의 일부가 되고, 고사리의 단단한 뿌리 중 하나가 되어 흩어진다 해도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였던 것들이 어느 곳의 풍경 속에 깃들어 계속될 것이니, 너무 애달파하거나 오래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2박 3일간 지인들이 제주에 다녀갔다. 밀도감 있게 함께 보낸 봄날이 간다. 공항에서 포옹을 하며 헤어지는 순간.늘 그렇듯 마음의 온기를 가득 담아 잘 지내라는 인사를 건넨다. 그 찰나의 온기에 마음이 뜨거워진다.
오늘은 스스로의 평안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