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은 최소 몇 년 동안은 두고두고 기억나리라 싶을 정도로 힘든 날들이었다. 매일 깜깜한 새벽에 눈을 떴고 도통 음식을 소화 시키지 못해 뭘 먹어도 몸이 도로 뱉어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으며 식도가 자주 뜨거웠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았고 눈두덩이는 늘 부어있었다. 그 기간은 (사실은 지금도ㅜㅜ)내가 최초로 학폭을 접수하고 처리하는 때였다.
학생들을 만나서 면담하고 그것들을 대조해서 사실을 확인하는 일, 행간마다 분노와 억울함이 꽉꽉 차다못해 넘치는 학부모 확인서들을 읽고 스캔하는 일, 그 와중에도 해야하는 내 학급 수업과 관리, 하필 스트레스가 절정일때 터진 다른 학년의 사안,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건 나보다 더 긴장한 관리자의 불안을 맞춰주는 일이었다. 출근 전, 퇴근 후 전화를 받아 답하고 하나의 보고서를 다섯번 수정하는 일... 이 모든 과정 아래 깔려있는 또 다른 생각은 내 아이에 관한 것이었다. 하원은, 저녁은 어떡하나 은은한 죄책감이 늘 깔려있었다. 이 3일을 살아내며 나의 몸과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겼다.
드디어 마무리가 되어야 하는 날, 역시 깜깜한 새벽부터 두통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눈물을 달고 출근해서 오후 세시까지 상사의 여러 번의 호출에 응하며, 혼자 스크립트를 작성하기도 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대망의 회의가 끝나고 관련된 서류 작성을 하고 기안까지 모두 올린 후 퇴근하니 집에는 하원을 맡아주신 친정 엄마가 계셨다. 엄마가 주는 따뜻함, 보살핌의 기운이 확실히 있었는지 엉망이 된 몸과 마음에 조금씩 온기가 돌았다. 차차 긴장이 풀려갈 때 상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퇴근 두 시간이 지난 후였다. 심장이 뛰었다.
오늘 결론 지은 내용을 다 뒤집겠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올린 기안을 아직 결재를 안했으니 회수를 하란다. 회의를 다시 열란다. 순간 그때까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끈이 끊어졌다. 처음으로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
'못하겠습니다.'
'제 업무량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그동안 저희 반을 거의 살피지 못했습니다. 오늘 한 학생이 다쳤습니다.'
그러다가도,'격앙된 감정을 보여서 죄송합니다.'고 사과했고
'새로 해야 하는 회의는 형식적으로 하고 일찍 끝내겠습니다.'라고 통화를 끝냈다. 끊고 나서도 화가 나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화가 나는 동시에 그래도 어른한테 너무 심했나?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그 다음날은 우리 학년 체험학습이라 학교를 떠나 있었으므로 상사와 대화할 일이나 업무를 처리해야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나를 계속 괴롭혔던 건 나였다. 그 날 뿐 아니라 일을 겪는 며칠 동안 나는 나의 감정을 끊임없이 의심했고 때론 비난했다.
'이게 이렇게 울 일일까?'
'다른 학교 생활부장들은 몇건씩도 처리하는데'
'작년 부장님은 스트레스 안받으셨다는데 왜 나는'
'너무 성급하게 화낸건 아닐까?교감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셨잖아.'
'내가 울면 다른 분들 마음이 불편하시지.'
'나 너무 예민한가?'
그러다 선생님들과 함께 즐겁고 편한 대화를 하면서 나도 흠칫 놀랄 말을 했다.
'제가 그렇게 질질 짜다가~'
앗, 질질 짜다니. 그 일을 울면서 해냈던 내가 듣기에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은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누구의 채찍이었을까? 확실한건 나의 목소리여서는 안된다는 거였다. 내가 나를 궁지로 몰아선 안되는 거였다.
올해 감정코칭을 많이 공부했다. 요는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것, 학생이 감정을 보이면 일단 그 감정을 인정해주고 다음에 행동만 교정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걸 읽고 학생들과 내 아이에겐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으면서 정작 나의 감정은 한톨도 받아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깨닫고 나자 내 마음이 편해졌고 오늘은 밝은 햇살을 느끼며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커피소년의 '내가 니편이 되어줄게.'를 들으며 눈물을 왈칵 쏟는다. 와 내 눈물, 이번주에 정말 헤프게도 썼다. 너무 고생한 나, 정말 애썼다. 그리고 내가 느낀 감정들, 모두 괜찮고 또 괜찮다. 설령 행동에 잘못이 있었더라도 수정하면 된다. 괜찮다는 말을 왜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여기 세상에서 가장 내 편인 내가 있는데. 진작에 괜찮다는 말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내가 나의 든든한 편이 되기로 마음먹으니 두려운 것들이 많이 사라졌다. 나는 쾌청하고 좋은 연휴에 나를 돌볼 것이다. 몸에 좋은 잠과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듬뿍 주고 마음은 축축한 동굴에서 꺼낼 것이다. 파란 가을 하늘에 평평히 펴서 말려야지. 몸이 잠과 음식을 잘 소화할 수 있게 되고 마음이 뽀송뽀송해지면 그때 또 할일을 찾아보면 되겠지 뭐.
선생님, 개천절에는 뭘 먹어야해요? -음. 명절처럼 먹을 음식이 정해진건 아니야.(진지)
아닌데요? 쑥이랑 마늘 먹어야죠!
라고 했던 우리반 귀요미의 말에 이제야 파하하 웃어본다. 그래, 뭘 심각해지고 그러나. 유쾌하게 살자. 내 편인 나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