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을 확정지은 자의 둘째 고민

2022년 4월의 일기

by Applepie

제목이 겁나 모순적이다. 이 무슨 뜨거운 아아주세요 같은 역설인가. 사실 이 주제로 글을 쓰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이건 아주 고전적인 논란, 많은 사람들의 고뇌의 영역이기에 잘 쓰고 싶어서 머릿속에서 오래 굴리다가 어제 가족의 둘째 소식을 듣고 글쓰기를 실행에 옮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모순적인 제목부터 해명하자면 나는 제목대로 '외동을 확정한' 사람이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그 생각엔 쭉 변함이 없어왔다. 그런데 요즘 그 확고함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먼저, 아이가 크면서 외동을 고수하는 부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저출산이다 뭐다 하지만 체감상 그래도 아직까진 주위에 둘인 집이 태반이다. 보수적인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늘 많은 쪽에 속하는게 맘이 편했던 나는 소수자가 되니 뭔가 조금은 불안함이 생겼다. 그럼 둘째를 낳는 사람이 많으니 고민된다는건가 하면 그건 아니다. 하나라서 외롭다거나 둘이 노니 부모가 편하다거나 하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다. 좀 더 말로 표현하기 벅찬, 심오한 이유를 깨달았다.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한 후부터이다.


아이의 유치원 입학이 어떤 계기가 되었는지, 그 심오한 이유가 무엇인지 풀어보고자 한다. 나는 아이가 유치원에 잘 적응할지 염려했고 내 아이의 타고난 기질-겁 많음, 불안이 높음-과 취향을 계속 생각했다. 하필 학기초라 그런지 담임선생님께 매일 전화가 왔는데 어린이집에서와 비슷한 얘기를 듣게 되었고 내가 하는 말도 비슷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날 문득 나의 세계가 좀 좁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런 기질을 가진 아이의 엄마로서 늘 비슷한 상황을 걱정하고 대비하고, 반대로 이런 상황에서는 잘하리라 기대하고. 이와 같은 역할놀이를 너무 길게 하다보면 아이와 나, 세상을 보는 시각이 엄청나게 편협해지겠다 생각하게 된 것이다. 서로 다른 기질의 두 자식이 있다면 너는 이런점이 있고 너는 또 이렇지. 하며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처럼 아이의 성장 하나하나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 좀 덜하겠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요약하자면, 흔히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가 세상의 전부가 된다고 하는데 그 세상이 하나인것보다 둘 이상인게 더 안정적이고 균형적일것 같다는 거다.

그게 좋은건 알겠으나 내가 할 자신은 없다는게 문제지만. 나는 첫 아이 임신때 조기진통으로 오래 입원했고 그때부터 쉰 직장을 3년만에 복직하여 이제야 좀 적응하고 있다. 등원도우미 이모님 외에 딱히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부부 둘이서 일과 육아, 집안일까지 해내는 상황에 조금 익숙해졌다. 이 안정이 맘에 든다. 잃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현상유지'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보다 우선이다. 가보지 않은 길은 늘 궁금하고 아쉬울 테지. 궁금증과 미련은 그냥 그렇게 두기로 하고 나는 내 길을 걸어가기로. 이제 이 길에 난 옆문을 완전히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