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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pie Jul 30. 2023

'도둑맞은 집중력'-요한 하리

왜 뼈를 때리고 그러세요. 아프게...

 내가 '집중력'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3년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하여 새로운 아이들을 만났을 때였다. 아니, 3년새에 무슨일이 있었던거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는 시간이 눈에 띄게 짧아진 것을 느꼈던 것이다. 2017년에 맡았던 6학년에 비해 2021년에 맡게 된 2학년의 집중력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1년이 다른 아동들의 성장속도를 고려하면 6학년과 2학년의 집중력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을 수 있어 내가 바로 직전 2학년을 맡았던 2013년과 2021년을 비교해 보았다. 순전 나의 기억에만 의존한 것이지만, 그렇게 비교를 하여도 지금 아이들의 집중 시간과 수업에 집중하는 정도가 현저히 짧아지고 낮아졌다고 확신했다. 코로나 때문인가, 스마트폰 때문인가, 그 사이 이 동네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그러다 한 해가 지났고 학교를 옮기고 다른 학년을 맡아도 아이들의 집중력 저하는 여전해 보였는데 더 큰 문제는 정서 행동장애까지 보이는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10년 전에는 드물었던 이런 아이들이 흔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그저 '스마트폰을 어릴때부터 써서 그런가보다. 아님 미세먼지 때문인가?'생각하고 지내던 차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났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대자(godson)인 애덤을 보고 집중력에 대해 연구하기로 마음먹는다. 엘비스를 좋아하던, 귀엽고 생기 넘치던 아홉살 애덤이 15세가 되어 학교도 중퇴하고 스마트폰을 몸에서 한시도 떼지 않는, 멍한 십대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애덤과의 여행(엘비스 프레슬리의 생가에 함께 가는 것)에서 받은 충격이 동기가 되어 요한 하리는 우리가 이전 세대에 비해 낮아진 집중력을 갖게 된 원인들을 찾으러 세계를 돌며 여러 분야 석학들, 엔지니어들, 의사들도 만난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는 페이지 마다 나는 충격보다는 '역시 그랬군.'이라는 생각이 가장 지배적으로 들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했던 집중력 저하의 원인들이 실제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펼쳐서 덮을때까지 정곡을 찔려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아프고 명쾌했던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수네는 이에 관해 오늘날 우리가 "소방 호스로 물을 들이켜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너무 많은 것이 쏟아지고 있어요."우리는 정보에 절여졌다.(중략) 1986년에 인간에게 쏟아지는 정보를 모두 합치면 대략 85쪽 분량의 신문을 매일 40종 읽는 것과 같았다. 두 사람은 2007년에 그 양이 하루 174종의 신문을 읽는 것과 맞먹는 수준으로 증가했음을 발견했다.(51~52p)

 비슷한 고민을 요즘 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켜면 정말 많은 정보가 내게 쏟아지고 그것들은 언뜻 모두 중요해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정말 이걸 알아야 하는가?'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의 감정을 자극하는(주로 분노) 정보들이 너무 많아 감정 소모가 심했다. 외부에서 온 정보가 나의 내면을 잠식하는 것 같을 때도 있었다.


UCLA의 한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 작업을 시키고 그 영향을 추적했다. 실험 이후 이들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한 사람들만큼 자신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63p)

멀티태스킹은 집중력에 최악이라는 내용인데 이에 대한 나의 경험이 차고 넘친다. 중요한 보직과 담임을 함께 하던 작년 말엔 동시에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방금 학생이 한 말, 내가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고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 못하기 일쑤였다. 생활에 작은 구멍이 뚫렸고 치매를 의심하던 나는 급기야 뇌 mri를 찍어보기도 했다. 사라진 듯 보였던 나의 기억력은 학기가 끝나고 일이 마무리가 되었을때에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딴 생각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더욱 활짝 펼쳐지게 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연결이 이뤄"진다. 계속 자신이 풀고자 했던 수학 문제에만 초점을 두었거나 정신이 완전히 산만했다면 앙리 푸엥카레는 해결책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답을 떠올리는 데는 딴 생각이 필요했다. (148p)

창의성에 대한 세간의 접근이 맘에 안 들었던 적이 많다. 형식에만 집중하여 전통식 학교 수업을 과하게 비판하거나 '틀을 깨야 한다.'는 식의 접근 말이다. '자유롭게 생각해 보라'며 판을 깔아주는 것 또한 창의성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책의 이 부분은 창의성을 신장시키기 위한 여러 접근 중 가장 본질에 초점을 맞췄다는 생각이 든다. 딴생각을 하는 것, 생각이 자유롭게 표류하게 두는 것. 수 년전에 들었던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의 강의도 기억난다. 창의성은 주변의 것들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유심히 보고 생각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했었다. 두 저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주위의 것들을 대충 보지 않는 태도에, 생각이 자유롭게 표류하도록 딴 생각을 많이 하며 관련이 있든 없든 내 생각들이 서로 연결되게 하는 것'이 창의성을 기르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이 될 것이다.


2009년에 네덜란드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집중력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아이들 27명을 데려다 두 집단으로 나누었다. 그중 15명에게는 '제거'식단이 주어졌는데, 오늘날 우리 다수가 매일 섭취하는 쓰레기(방부제, 첨가물, 합성 착색료)를 먹으면 안 되고 대신 나의 조부모가 음식이라 여겼을 만한 식품을 먹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머지 12명은 평상시처럼 계속 서구식 식단을 먹었다. 그 결과 방부제와 착색료를 제거한 식단을 먹은 아이들의 70퍼센트 이상이 집중력이 향상되었으며, 평균 향상률은 놀랍게도 50퍼센트였다.(314~315p)

전통적인 슬로푸드가 건강 뿐 아니라 집중력에도 요즘의 간편식에 비해 훨씬 좋다는 이 부분이 특히 뼈를 때렸다. 워킹맘이라는 핑계로 냉장고와 팬트리를 즉석식품으로 가득 채우고 그것들에 입맛에 길들여진 우리 가족을 생각하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기록한 이 부분 외에도 이 책에는 집중력에 대한 방대한 정보가 있다. 가장 불편했던 진실 하나는, 집중력을 유지하려는 개인의 노력이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이 승산이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문제라기보단 거대 산업의 방해가 있다는 것. 유튜브의 알고리즘, 이메일 알림, 무한 스크롤 같은 것이 개발될 때마다 인류는 더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 할애해 왔다. 그래서 저자는 개인적 차원의 노력에 더해 거대 테크 산업에 제동을 거는 노력을 할 것을 권한다. 물론 깊이 동의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집중력을 지키는 데에는 당장 지금의 골든 타임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나는 개인적 노력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집중력을 앗아가는 테크 산업과 싸우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일지라도 그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것이므로.

 

 또 저자의 큰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우리 나라의 실정과는 맞지 않는다고 느꼈던 부분이 아동의 adhd를 다룬 장이다. 저자는 미국의 adhd 아동이 급격하게 증가한 원인이 진단을 과하게 내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신과에서 쉽게 아동들에게 adhd 진단을 내리고 진정제를 과하게 처방한다는 것인데 실상은 약이 필요 없는 아동들이 많고 그보단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adhd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대부분 스트레스에 과하게 노출되고 안정되지 못한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저 그 환경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지 질환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의 큰 생각엔 동의한다. 10년 넘게 여러 학년 담임을 맡으며 정신과에 의뢰해야 할 친구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그런 아동의 어머니들 중 나와 긴밀히 협력하시는 분들은 아이가 병원 가기 전 학교 생활에 대해 알릴 것이 없는지를 물으시기도 하고 약 용량이나 종류가 바뀌었음을 알려주시기도 한다. 따라서 나는 정신과 약(주로 adhd약)에 대한 아동의 반응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현재 우리나라의 소아정신과 전문의 선생님들이 약을 얼마나 섬세하게 쓰는지도 알게 되었다. 심도 있는 상담치료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생각엔 동의하나 이 부분을 읽고 학부모 독자들이 학교에서 큰 고민없이 학생을 adhd라 의심해서 병원에 의뢰하고 병원은 쉽게 진정제를 처방한다는 오해를 가지실까 걱정이 된다.


 책을 읽기 전 내가 가졌던 의문, '왜 학생들은 10년 전에 비해 수업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을 충분히 얻게 되어 개운한 마음이다. 예상치 못했던 건 없었다. 유튜브, 틱톡, sns, 편의점을 가는 빈도 수, 게임하느라 잠을 적게 자는 밤들, 학교나 가정에서의 스트레스 등 이 모든 것들이 10년전에 비해 많아졌고 그것들이 우리 아이들로부터 집중력을 앗아갔다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에 뼈를 맞았으니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나하나 해보려고 한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노력은 보드게임을 하자고 조르는 아들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아닐까?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만들어 놓고 아들과의 주사위 게임에 빠져봐야겠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느끼며, 간식으로는 감자나 옥수수를 쪄먹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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