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수년생인 나는 작년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원래 자고로 건강검진이란 미루고 미루다 가을이나 겨울쯤에 받는것이 국룰이거늘, 2022년엔 학폭업무를 맡으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보는 사람들마다 바싹 말라가는 얼굴을 보며 나를 걱정했기에 덩달아 걱정이 된 나는 1월이 되자마자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별 이상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대부분이었지만 맘속 깊은곳에선 어딘가 문제가 생겨서 병가를 쓸 수 있기를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검진결과 내 몸은 동년배 중 꽤 우수한 편이었고 딱 하나 걸렸던 것은 위에 불과했다. 경험이 풍부해보이는 지긋한 내과선생님께서 명쾌한 지침을 내려주셨다.
"자그마한 용종이 하나 있고 약한 위염이 있네요. 전혀 암인것 같지는 않지만 1년에 한번씩 내시경을 해서 추적관찰 하세요. 한국인들은 40세부터 1년에 한번 위내시경을 하는것이 좋은데, 남들보다 5년 일찍 시작한다 생각하세요." 라고.
그 지침에 따르러 올해에도 위내시경을 받았다. 별일이야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받을까말까 고민에 미루고 미루다 병원으로 향했다. 공복을 유지하고 수면마취를 하고 푹 자다 일어나 심드렁하게 향한 진료실에서 들은 결과는 다소 놀라웠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용종들에 위궤양까지. 암일 가능성은 낮지만 혹시 모르니 궤양은 떼서 조직검사를 할 것이며 헬리코박터 균이 있는지도 검사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용종이 이렇게 많은 걸로 보아 대장에도 있을 수 있으니 대장내시경도 하길 권하신다고. 약을 먹고 8주후에 내시경을 다시 해서 궤양이 없어졌는지 확인하자고 하셨다. 마취약이 단박에 깨던 순간이었다.
"저 1년전에는 위가 이렇지 않았는데요, 1년새에 왜 이렇게 된거예요?"
대답은 당연하게도, '모릅니다.'였다. 누가 알겠는가, 몸의 주인인 나도 모르겠는데 의사라고 알겠는가.
심란했다. 귀찮은 내시경을 8주 후에 또 해야 한다는 것이. 하지만 더 심란했던 것은 1년 새 많이 상한 내 위를 마주하는 것이었다. 나는 1년간 어떻게 살았나. 동생은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였을거라고 했다. 나도 상당히 동의했다. 유명한 금쪽이 담임에 과학정보부장, 바쁜 남편의 공백으로 육아를 도맡아 하기 버거운 한해였다. 어떤 날엔 학교에서 숨이 턱 막힐만큼 속이 아팠는데 그게 궤양때문이었구나, 뒤늦게 원인을 찾았다.
의사인 남편은 늘 그렇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스트레스가 안좋긴 하지~ 하면서 장모님도 위가 안좋으시니 네가 닮은거라고 했다. 또 헬리코박터균이 있을것 같다고도. 남편의 이 말에 나는 최근 나와 함께 밥을 먹은 사람들을 떠올리곤 미안해졌다. 또 더욱 철저하게 집에서 아이와 나의 음식이 섞이지 않게 해야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생겼다.
그럼 1년간 위를 망가뜨린 나의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많고 많았다. 공복에 커피와 사과를 아침식사로 먹었다. 또, 술도 좋아했다. 특히 위스키에 입문하여 유명한 브랜드 위스키 몇병을 찬장에 쟁여놓고 유독 힘들었던 날엔 아이를 재우고 남편과 홀짝홀짝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워낙 늦은 밤에 마신지라 충분히 소화시키지도 않고 잤다.
나의 위는 스트레스와 나쁜 생활습관, 유전이 부지런하게 합작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며칠 심란했지만 사람은 곧 평정심을 되찾더라. 나쁜 생활습관을 고치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마음을 공부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8주 뒤엔 궤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게 나의 목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