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하루 앞둔 화요일. 2학년 꼬마들에게도 한글날의 의미를 알려주고 어떤 마음으로 한글날을 맞이해야 하는지를 교육해야 하는 날이다. 마침 교과서에 세종대왕과 한글에 대한 차시가 있어 어렵지 않게 수업을 구상했다. 여러 능력자 선생님들의 자료를 찾아 수업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던 날- 세종대왕에 대한 그림책을 읽고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이었으나 워낙 훌륭하여 왕세자가 됐다는 것, 왕세자시절부터 책을 유난히 좋아하고 백성을 사랑했다는 설명을 마치고 훈민정음 언해본을 커다란 프로젝션 티브이 화면에 띄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아이가 외쳤다.
"어? 저기 ㅂ과 ㅅ이 붙어있네?"
그 아이가 거기까지만 말해도 아이의 입가에 머무른 웃음을 보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걔가 뭘 발견한건지. 아마 인터넷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속어 ㅂㅅ이나 순서를 바꾸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숫자 욕을 발견했을 테다.
이 어린이는 결코 나를 당황케 하고 싶었다거나 아이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을 거다. 이 아이는 우리반에서 아이같은 모습을 가장 많이 보이는 애니까. 순수하고 웃음도 울음도 많은, 당연히 모르는 것도 많은 아이. 얼마전엔 이런 일이 있었다. 다른 학생이 이 학생에게 욕을 들었다며 나를 찾았다. 둘을 불러 얘기를 듣는데,
"니가 그랬잖아. 개새라고."
-"응. 그랬어. 근데 그게 욕이야? 그거 유튜브에서 많이 나오던데?"
그날 나는 정말로 몹시×1000 순수한 아이에게 그건 욕임을 알려주었더랬다.
사실 십여년의 교직경력을 돌아보면 이런 사례는 꽤 있다. 누구보다 순진하고 모르는게 많은 아이들, 가정의 보살핌이 적은 아이들이 나쁜 것을 빨리 배우는 경우 말이다.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바쁜 부모님의 눈을 피해 어린이들이 일탈하는 곳이라고 해봐야 투니버스가 전부 아니었던가. 그런데 요즘은 부모님의 손이 닿아야만, 몇번의 필터를 거쳐야만 볼 수 있는 것이 어린이 전용 프로그램인 것이다. 반면, 자극적인 유튜브 채널에는 어른의 도움이 없어도 아주 손쉽게 접근할 수 있어 돌봄에서 소외된 아이들일수록 그곳의 언어를 빠르게 많이 습득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어제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 주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니 친절하게, '그건 나쁜 말이란다~^^' 하지 않았다. 대신,
"훈민정음에서 그걸 발견하는 건 맑지 않은 눈이야." 라고 단호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그 아이가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느끼길 바랐다.
그래서 훈민정음을 보고 ㅂㅅ을 찾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그 순진하고 어린 아이의 마음에 살짝이라도 새겨지기를 바랐다.
사실 이것은 요즘의 교육 분위기와는 맞지 않다. 지금은 학생의 감정이 가장 우선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학생이 수치심을 느꼈다면 정서적 아동학대'라는 문구를 발의된 학생인권 관련 법안이나 기사문에서 숱하게 보았고 그런 풍조에 따라 교사들도 스스로의 언행을 점검하고 몸을 사리는 실정이다. 내가 어제 아이에게 한 말 또한 나의 검열을 완벽하게 통과하지 못하여, 약간의 찝찝함이 남아 있다.(그래서 이렇게 글로도 쓰지 않는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의 내가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고 생각한다. 박완서 작가의 동명의 단편소설처럼, 너무 모르는 게 많아 선을 넘는 아이에게 선을 지키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열쇠는 어쩌면 부끄러움이 아닐까? 나는 그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것도 가장 안전하게 배울 수 있는 교실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