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너무 열받고 괴로워서 찾아왔단다. 사건의 전말을 들어보니 기가 찬다.
그녀는 여자만 30명쯤 되는 여초집단에서 일했다. 어딜 가든 남자든 여자든 한쪽 성별만 모아두면 그 안에서 패거리질에 서열을 나누고 시기질투에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여기에 휘말린건지 언제부턴가 공지가 전달이 안되고, 혼자 밥도 먹게 되고, 심지어 락카룸의 옷이 없어지는 일까지 생겼다.
찝찝함과 수치심에 상사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모진 말을 들었고, 화산처럼 폭발한 그녀가 갑질녀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노동청에 신고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회사는 그녀를 다른 부서로 발령내 버렸다. 그 상사 갑질녀는 그대로 두고 말이다.
그녀는 "구질구질하고 더러운 회사 어차피 그만둘건데, 그만두더라도 정당한 보상을 받아주세요!"라고 한풀이 하듯 소리쳤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를 대신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회사도 노무사를 선임했다. 통화해보니 은근 자신감이 묻어난다.
그가 말했다. "인사명령은 업무상 필요에 따른 조치였을 뿐입니다"
'얼씨구...'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괴롭힘 정황이 너무 분명하잖아요. 보복성 조치 아닌가요?"
"글쎄요, 인사명령은 사용자의 재량입니다"
늘 이런 식이다. 협상 초반은 “대리인끼리 얼굴 붉힐 일은 없죠”라며 하하호호 예의바르게 시작하지만 실상은 옷 소매에 칼을 숨긴 팽팽한 심리전이다. 중요한 건 말싸움이 아니라 셈법이다.
괴롭힘 인정 시 과태료 1,000만원에 + 불리한 처우(부당 인사명령)까지 인정되면 벌금 3,000만원. 회사 입장에선 리스크가 크다. 반면 인정되지 않으면 부담은 0이니 회사도 강경모드다.
상대도 다 따져보고 계산기를 두드렸겠지. 그러니 협상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숫자들은 평행선을 달렸고 줄다리기가 몇 시간째 이어졌다.
결국 내가 먼저 줄을 놨다.“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노동청 판단을 받죠. 수고하셨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쉬움은 컸다. ‘내가 너무 서둘렀나? 불리한 처우도 인정 안 되면 어쩌지...’ 괜시리 책상을 정리하고 다른 사건 서류도 들춰봤지만 사실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노무사님, 협상 계속하시죠.” 상대 노무사님의 얘기에 어퍼컷을 말아올리며 속으로 외쳤다. "예쓰!"
이번엔 숫자가 달랐다. 현실적인 제안이 나왔고 합의는 순식간에 끝났다. 극적인 반전이었다.
며칠 뒤, "노무사님 합의금 들어왔어요. 감사합니다" 라며 그녀가 문자를 줬다. 짧은 메시지였지만 지금 심경이 어떨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협상은 늘 이기는 법도 없고 정답도 없다. 내가 잘나서 된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흘러간 것일 뿐.. 오늘은, 다행히 흐름이 우리 쪽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날이 있다. 해가 쨍쨍하다. 오늘은 그녀가 조금은 덜 억울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