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 에세이 13. 밀양에서 받은 진짜 숙제

by 지노무사

친정인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하는 농장 사업주들에게 노동법 기초를 알려달라는 요청이었다.

공단에서 의뢰가 오면 마음이 괜히 분주하다. 긴 방학이 끝나고 담임선생님한테 숙제 검사를 맡는 초등학생처럼 괜히 긴장되고 조심스럽다.

울산에서 1시간을 차로 달려 밀양에 도착했다.

농장 사장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행님, 식사 잡솼능교", "뜨랙타 잘 돌아갑디까" 구수한 사투리에는 흙냄새, 땀냄새, 그리고 사람냄새가 그대로 배어 있었다.

강의 주제는 단순했다. 외국인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최저임금, 근로계약서, 4대보험 등을 확인해주러 온 것이다.

강의 말미에 아까부터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여자 사장님 한 분이 손을 번쩍 들었다. 목소리엔 날이 서 있었다.

“일 안해도 최저임금을 주란말인교?"

"네, 농한기에 일이 없어도 외국인근로자에게 월급을 주셔야 해요"

"우리는 시급젠데요. 시급제는 일 한 시간만 카운트해가 주면 되는거 아닝교"

"시급제요..? 외국인근로자인데 시급제 근로계약을 맺으셨나요?"

이곳에선 외국인근로자를 필요할 때만 일하고, 필요 없으면 쉬게 하는 시급제 방식으로 고용하고 있었다.

'이게 외국인고용 취지에 맞나?' 말문이 막혔다.

현장의 현실을 몰랐다는 당황스러움과, 내 기본 상식을 뒤흔드는 시급제라는 고용형태가 머릿속에서 어지러이 뒤죽박죽 섞여버렸다.

정답만 쫓자면, 아무리 시급제라 해도 근로자의 날에 일했다면 시급만큼은 쳐서 줘야 한다. 하지만 정답을 떠나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근로자에게 시급제 근로계약을 맺는 것은 애초에 제도 취지와 영 동떨어진다.

이건 공단이 할 일도 아니고, 고용센터도 할 일이 아니다. 출입국사무소도 한 발 빼고, 모두가 제 일 아니라고 할 게 뻔하다. 정작 그 사이에서 농민, 외국인근로자들만 오락가락 갈피를 못 잡고 있을테다.

"강의를 할라면 이 정도는 알아가 왔어야지요!" 앙칼진 한마디가 심장을 콕 찔렀다. 맞는 말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준비했던 강의를 모두 마쳤더니 머리가 하얗게 센 청년회장님이 내 손을 꼭 잡았다.

"농민 좀 도와주소... 이래 손으로 깻잎 뜯어가 하는거 돈이 얼마나 되겠십니꺼... 최저임금도 오르고 외국인은 자꾸 도망가뿌고... 농사 일 아무도 안할라캅니다. 제발 쫌 도와주이소"

손은 거칠고 두꺼웠다. 흙과 땀과 세월이 쌓아올린 손. 나는 겨우 대답했다. "네... 저도 최대한 알아보겠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밀양 깻잎 밭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도대체 뭘 알아보겠다고 대답한걸까. 그저 자리를 모면하려는 습관적인 말 아니었나'

반성했다. 나는 현장에 대해 너무 몰랐다. 책상머리에서 배운 지식은 현장 앞에 서면 한없이 초라해진다.

나는 현장형 노무사가 되어야 한다. 탁상이 아니라 땅 위에 서는 사람. 흙냄새를 알고 사람 손을 잡을 수 있는 노무사. 그런 노무사가 되어야 한다.

밀양에서 나는 진짜 숙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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