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 에세이 11. 노무사의 봄날은 언제쯤?

by 지노무사


요즘 참 조용하다. 전화도 덜 울리고 사건수임 건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우리만 이런건지, 울산만 이런건지, 노무 업계만 이런건지.



"문노무사, 경기는 돌고 도니깐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맞아요 형님, 금방 또 올라올거에요"



서로 위로는 하지만 속으로는 걱정도 크다. 이게 단순한 불황이 아니라 구조적인 침체가 시작된 건 아닐까 싶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다.



아닌게 아니라 트럼프 취임 이후 전 세계 증시가 새파랗게 녹아내렸고(내 SOXL 누가 좀 살려줘...) 윤 대통령 탄핵으로 나라는 반으로 쪼개졌고 출산률은 박살나서 "대한민국 망했다"는 밈이 나온지도 꽤 됐다.



기업은 허리띠 졸라매며 인건비부터 줄이고 구직자는 문자 그대로 "그냥 쉰다". 시장에 돈이 돌지 않으니 자영업자는 여기나 저기나 곡소리다. (2024년 자영업 폐업자 98만명)



사람이 움직여야 관계가 생기고, 관계가 있어야 갈등이 생기고, 갈등이 있어야 나 같은 노무사도 할 일이 생기는 법인데 지금은 다들 눈만 동그랗게 뜨고 웅크리고만 있다.



입사도 퇴사도 싸움도 해고도 모든게 잠잠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이것저것 일도 벌려보지만, 매력 있고 수익성 넘치는 사업에는 이미 굳건히 자리 잡은 선배님들이 진을 치고 계시기에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시장 쪽을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90% 폭탄세일"을 방불케하는 저가 경쟁이 한창이다. 9,000원짜리 노동상담, 3만원짜리 월 자문이 플랫폼 곳곳에 넘쳐난다. (참고로 상담은 보통 1시간 5만원, 월 자문은 20만원이 기본이다)



차별화 전략? 브랜딩? 이런건 교과서 속 얘기일뿐이고 고객은 그냥 제일 싼 걸 클릭한다. 싸지 않으면 고객이 찾질 않으니 너도나도 가격을 낮춘다. 가끔 오징어게임의 그 유명한 대사가 머릿속을 맴돈다.



"이러다 다 죽어"



여기에 AI까지 들어왔다. 근로계약서도 써주고, 상담도 해주고, 물어보면 노동법령도 뚝딱 찾아준다. ‘무료 AI 노무사’가 등장하는 것도 그리 멀지 않은 얘기일지 모른다.



(재밌는 건 노무사를 대표한다는 노무사회가 앞장서서 AI도입을 외친다는 점이다. 소득효과 운운하지만 내가 보기엔 일거리 줄이는 대체효과가 더 크다. 도대체 누구 밥그릇을 챙긴다는건지 모르겠다)



결국 시장은 구조적으로 조용히 쪼그라드는 가운데 상방은 막혀 있고, 하방은 피가 튄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것저것 주워 먹고 배탈이 나고 치이고 깔리고 찌그러진다.



<세이노의 가르침> 109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내가 보기에 부자 되기에는 전혀 신통치 않은 전문 직업이 서너 개 있는데 은행에서 세부적인 실상을 모르는 것 같다. 그 자격증 소지자들의 체면을 생각하며 입을 다문다."



처음엔 설마설마 했지만 요즘엔 그 서너 개 중 하나가 노무사 아닐까 싶은 생각이 자꾸 든다. 부자 되기엔 전혀 신통치 않은..



아, 정말 먹고 살기 힘들다.



그래도 이런 생각도 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겠지.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치이고 깔리고 찌그러지며 버티고 있겠지"



이 태풍이 지나가면 다시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사람들도 움직일테다. 그날이 올 거라 믿으며 오늘도 엉덩이 힘 바짝 주고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러본다.



그리고 이왕이면 같이 버텼으면 좋겠다. 혼자는 너무 힘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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