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 에세이 10. 사무실에 들어온 늑대

by 지노무사

노무사로서 겪는 불편하고 소름 돋는 순간 중 하나는 바로 양의 탈을 쓴 늑대를 마주하는 때이다.


어떤 고객이든 거짓말은 조금씩 하니깐 그러려니 하고 흘려듣는 경우가 많은데, 아주 가끔은 이런 거짓의 범주를 까마득하게 뛰어넘는 속이 시커먼 진짜 늑대를 만날 때가 있다.


그 늑대의 음흉한 속을 마주하는 순간이란, 뭐랄까... 깊은 바닥에서 퍼올린 지하수를 빈속에 벌컥벌컥 마신 것마냥 서늘하고 섬뜩하다.


그 날 찾아온 고객도 그런 사람이었다.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찾아온 젊은 여성이었는데, 나는 뭣도 모르고 "그 대표 그 사람 굉장히 악질이네요" 그르렁대며 욕도 하고, 얼굴도 모르는 그 대표를 지구상 최악의 쏘시오패스로 몰아갔다. 이런 감정적인 동조가 고객을 안심시킨다는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사건 수임 이후에는 이상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말이 자꾸 바뀌고, 시간 순서가 꼬이고, 뭘 물어보면 횡설수설이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한테는 솔직하게 말씀하셔야죠"

“노무사님, 저를 못 믿으세요?”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요..”

한 발 뺐지만 꺼림칙함이 계속된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가 준 카톡자료를 보다가 결국 나는 보고야 말았다. 그 늑대의 시커먼 속을 말이다.


카톡엔 해고가 아니라 스스로 그만두겠다는 정황, 퇴사 이후 대표에게 어떻게 엿을 먹일지, 어떤 식으로 노무사를 이용할지까지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동료와 낄낄대며 웃는 이모티콘을 보니 소름이 끼치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선택을 해야 했다. 프로정신으로 계속할 것인가, 정의감으로 도망칠 것인가. 그리고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진실을 알아버린 이상 양심이 허락치 않았다.


그녀를 만나 “고객님, 죄송한데요.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 더 이상 사건 진행이 어렵겠습니다.” 꼼지락꼼지락 내 손이 그녀의 눈치를 봤다.


근데 의외인게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착수금을 돌려받곤 조용히 사무실을 나갔다. 그 무심함이 더 섬뜩했다. 마치 이미 플랜 B를 가진 것처럼 다음 타깃을 향해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어슬렁어슬렁..


가끔은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도 한다. "거절하긴 너무 큰 돈이었다."며 샐쭉 말하곤 재수없는 표정을 짓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씩 웃기도 한다.


아 그렇잖은가. 이왕 흔들릴거면 통장이라도 묵직하는 쪽이 나으니깐 말이다.


뭐, 그런 제안이 실제로 오진 않겠지만 정의냐 돈이냐를 따져야 할 순간이 온다면, 적어도 선택을 해놓고 후회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흔들리더라도 더 영리하게. 상처받더라도 덜 손해 보게. 그게 아마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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