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청년이 푸르죽죽한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얼마나 접었다 펼쳤는지도 모를 근로계약서를 펴보이며 얘기했다.
“회사에서 저보고 갑자기 그만두래요"
“엇, 혹시 징계를 받으셨나요?”
"아니요. 그냥 근로계약서를 잘못 쓴거래요."
“잘못 썼다구요?”
“네, 원래 1년만 쓸 계획이었는데, 실수로 2년으로 적었다네요.”
계약서를 펼쳐봤다. ‘2년’이라는 숫자가 명확했고, 직인도 선명했다. 참 어리둥절한 상황이다. “회사가 참 막무가내네요. 계약기간이 아직 1년 남아 있는데 말이죠. 이건 전형적인 부당해고로 보여요.”
청년은 여전히 흙빛으로 말했다. "사실 저도 너무 아쉬운게 이 회사의 연봉이랑 조건이 나쁘지 않거든요. 남은 1년 계속 다니고 싶어요”
"그렇다면 회사에 강하게 주장해야죠. 남은 기간 계속 일하겠다고 얘기하세요. 그런데도 씨알이 안먹힌다면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가능하고, 해고예고수당(30일치 통상임금)도 청구할 수 있으니 우리에겐 카드가 꽤 많습니다.”
알겠다며 꾸벅 인사하고 돌아간 며칠 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노무사님, 사장님이랑 얘기해봤습니다.”
“네, 계속 다니게 됐나요?”
“아니요... 사장님께서 이 업계가 좁아서 시끄럽게 나가면 재취업에 불이익이 있을거라고 하시더라구요. 1년 다녔으면 많이 다닌거라고, 필요하면 추천서도 써주시겠다고 해서... 그래서 그냥 사직서를 쓰고 나왔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힘겹게 입을 열어 “그랬군요. 수고 많으셨어요."라고 말하고는 통화를 끊었다.
그의 괴로운 심정이야 넉넉히 이해되지만 나는 대체로 저런 회사의 가스라이팅을 혐오하는 입장이다.
‘업계가 좁다’는 말로 협박하듯 겁을 주고 ‘조용히 나가면 추천서라도 써주겠다’는 달콤한 미끼를 던지는 것. 익숙하고 뻔한 치졸한 레파토리다.
문제는 이 말에 홀딱 넘어갔다는데 있겠지. 열번 싸우면 백번은 이길만한 싸움이었건만 이 청년은 그 싸움을 시작도 하지 않은 채 흰수건을 던지고 링을 내려왔다. 재취업이 막힐까봐, 소송을 당할까봐, 혹시 업계에서 낙인이 찍힐까봐 말이다.
그날 밤, 사무실에서 계약서를 다시 펼쳐봤다. 여전히 ‘2년’이라는 숫자가 또렷하다.
“하, 참…” 사장님 책상 앞에서 사직서에 이름을 꾹꾹 눌러적었을 청년을 떠올리니 갑자기 또 한숨이 나왔다.
물론, 진짜 그런 업계도 있겠지.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본의 아니게 손해를 봐야 하는 경우, 앞으로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한두 번쯤 억울함을 삼켜야 할 때도 있을 거다.
하지만 말이다. 그런 구조라는 것을 이용해서 청년 하나쯤은 우습게 눌러도 된다고 여기는 그런 개떡 같은 생각을 가진 어른들이야말로 그 좁은 업계에서 퇴출되고 낙인찍혀야 할 진상들 아닐까
당당하게 일하고, 정당하게 대우받는 곳. 그게 진짜 멋진 어른들이 만들어야 할 업계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