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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gettingbetter May 05. 2024

사실 그렇기만 한 것도 아니었는데


엄마가 열두 살의 나에게 써주었던 편지. 나는 이 편지의 존재를 엄마가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편지를 보관해 두었다가 엄마가 떠난 뒤 내게 전해주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해 조금만 지나면 무뎌질 거라는 것. 사실 거짓말에 가깝다. 사 년이 지났다. 시간은 약이 될 수 없다. 감정이 무뎌진다는 것도 사실 이상하다. 감정은 잃는 것에 가깝다.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억으로 대체되기에 자리를 잃는 거다. 쉽게 말해 다른 기억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기억은 그대로 유지된다. 사라지지 않는다. 그 자리 그대로 남아있다.


    학교에서 아동 문학을 강의하시는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저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던 이유가 있으며, 대부분 자신만의 아픔이 있어 글을 쓰게 된다고. 그래서 글을 쓸 때에는 세계로부터 충분히 나를 보호해야 하며, 그래야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도 외부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다고.


    엄마 이야기는 이제 그만 썼으면 좋겠어. 엄마는 이제 진부해. 엄마 이야기 말고 다른 거 써 보자. 입시생 시절부터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과외 선생님과 교수님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한 번씩은 들어봤던 말이다. 그렇다면 왜 써야 하지. 이게 나의 아픔이고, 시가 나의 마음을 덜어주는 것뿐인데. 엄마와 여자를 말하지 않는다면, 그래야 한다면 나는 왜 쓰지. 왜 써야 하지.


    나는 시를 쓸 때 초고는 솔직하게, 퇴고는 실재를 허구로 가리는 방식으로 쓴다. 내 시의 화자들은 대부분 1인칭 화자이며, 엄마나 여자에 대해 말한다. 오래된 고목 같은 여자, 자전거를 타고 멀어지는 엄마, 나를 꺼내기 위해 배를 찢는 엄마, 그런 잔디 같은 여자에 대해. 내 시를 읽는 사람들은 시가 너무 숨기는 방식으로 쓰여 있어서 해석하기 어렵다며, 조금은 드러나게 써도 된다고 말한다. 그럼 나는 어떻게 나를 보호해야 할까. 나를 어떻게 지켜야 하지.


    한 번은 애인에게 내가 쓴 에세이를 보여준 적 있다. 그는 나의 에세이를 읽고 옅게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행복한 이야기를 쓰는 모습도 보고 싶다고. 그 당시 나는 행복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는 많지 않다고 얼버무렸지만, 모든 건 핑계였음을 안다. 무엇이든 쓸 수 있고, 무엇이든 글이 될 수 있다. 다만, 쓰지 않은 것뿐이다.


    얼마 전, 본가에 내려가 글을 쓰는 동생을 만났다. 스무 살이 된 기념으로 함께 술을 마셨다. 취기가 오름과 동시에 오랜만의 만남으로 인해 쌓였던 어색함은 자연스레 사라졌고, 동생은 내게 사과했다. 언니는 아무런 아픔 없이 사랑만 가득 받고 자란 것 같아서 질투도 나고 부럽기만 했는데, 브런치 글을 읽고 언니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그동안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너무 미안했다고. 그래서 꼭 사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득,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 친구가 "너는 정말이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것 같아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라고 말해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동생의 말과 친구의 말이 한 데 맞물리는 순간,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정말 그랬다. 사랑받은 기억이 더 많았다. 어머니도 네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보시면 마음이 아프실 거라고, 그러니 함께 행복해지자고 말해주었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여자는 항상 나를 생각했다. 항상 나를 떠올렸던 여자의 눈에는 그리움이, 입가에는 미소가, 마음에는 따듯한 봄바람이, 손에는 부드러운 나의 살결이, 머리에는 나의 마음이 가득했다. 열일곱 번의 해가 바뀌도록 사랑받았던 기억이 사 년에 가려져 있었다. 그동안 '좋은 인생의 추억을 만들며 살자'는 여자의 말뜻을 해석하지 못했다. 슬퍼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진정으로 기억해야 할 것들을 잊고 있었다. 여자는 자신이 없을 때도 내가 버텨낼 수 있도록 현명하게 판단한 뒤 행동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은 약이 될 수 없고, 감정은 잃는 것에 가깝다. 다른 기억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기억은 그대로 유지된다. 사라지지 않는다. 그 자리 그대로 영원하다. 이제부터라도 여자와의 공백을 십칠 년이란 추억으로 조금씩 메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자 세계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아팠던 기억을 행복했던 기억으로 대체시켜 공백을 메운 뒤 스스로 단단해지는 것이었다.


    누군가 내게 더 이상 엄마 이야기를 쓰지 않을 거냐고 묻는다면, 아직까지 나는 그에 대한 확답을 줄 수는 없다. 다만, 전보다는 덜 슬픈 쪽으로 쓸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사 년의 방향 대신 십칠 년의 방향으로 걷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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