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맛

by Imgettingbetter

다 왔다.

아버지는 합장을 했다. 눈을 감고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입술이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아버지의 옆얼굴을 보았다. 깊게 패인 주름 사이에 땀이 고여 있었다. 아버지는 무엇을 빌고 있을까. 엄마가 돌아오게 해달라는 소원. 그게 안 된다면 엄마와 똑같은 여자를 만나게 해달라는 소원.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이제는 그 여자가 도망가지 않게 해달라고 빌고 있을까. 아니면 그 여자가 진짜 엄마가 되게 해달라고 빌고 있을까. 타인의 인생을 제물로 바쳐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기도. 누군가는 억지로 껍데기를 씹고, 누군가는 싫어하는 닭발을 삼켜야만 유지되는 평온. 아버지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불렀고, ‘응답’이라고 믿었다.

나는 절을 했다.

한 번. 부처님, 오랜만입니다.

두 번. 아버지는 기어이 소원을 이뤘습니다.

세 번. 저 사람은 지치지도 않고 남의 인생을 갉아먹으며 자기 배를 불렸습니다.

이마를 바닥에 대고 한참을 있었다. 매트에서 올라오는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숨을 참았다. 절을 마치고 일어난 아버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역광 때문에 아버지의 얼굴이 검게 보였다. 부처의 그림자와 아버지의 그림자가 겹쳐져 거대한 어둠처럼 보였다.

뭐라도 빌어. 부처님이 다 들어주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시큰거렸다. 나는 부처를 보았다. 돌이었다. 그저 거대한 바위 덩어리였다. 바람에 깎이고 비에 젖은, 아무런 감정도 없는 무생물. 저 돌덩이가 무슨 힘이 있어서 소원을 들어준단 말인가. 사람들은 저 돌덩이에 대고 소원을 빈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건 것이었다. 괜찮다고. 다 잘될 거라고. 내 욕심은 정당하다고.

빌 거 없어요.

왜 없어. 민석이랑 잘 되게 해달라고 빌던지. 아니면 취직 잘 되게 해달라고 빌던지.

아버지는 끈질겼다. 자신의 믿음을 나에게도 강요하고 있었다. 같이 믿어달라고. 내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고 동조해달라고. 나는 등산로 옆에 쌓인 돌탑들을 보았다. 누군가 다시 공들여 쌓아 올린 탑들. 내가 무너뜨렸던 그 자리에도 누군가가 다시 돌을 쌓아 놓았다. 더 높고, 더 위태롭게. 무너뜨려도 무너뜨려도 다시 솟아나는 욕망들. 나는 그중 하나 앞에 섰다. 맨 꼭대기에 작은 돌 하나가 위태롭게 얹혀 있었다. 나는 손을 뻗었다. 그 돌을 집어 들었다. 차갑고 딱딱했다. 거칠거칠한 표면이 손바닥을 찔렀다. 이 작은 돌 하나에 얼마나 많은 무게가 실려 있었을까. 누군가의 합격, 누군가의 건강, 누군가의 사랑. 아버지가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돌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깨물었다. 아그작. 이가 부러질 듯한 통증이 잇몸을 타고 머리까지 울렸다. 돌은 깨지지 않았다. 내 이빨만이 비명을 질렀다. 입안에서 비릿한 쇠맛이 났다.

뭐 하는 짓이야!

아버지가 소리쳤다. 놀란 눈으로 다가왔다. 나는 입에 물고 있던 돌을 뱉어냈다. 돌은 바닥에 떨어져 툭,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침이 묻은 돌은 번들거렸다.

돌을 씹는 기분이에요.

항상 돌을 씹는 기분이었어요.

아버지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나는 아버지보다 먼저 등을 돌렸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 나는 입 안을 맴도는 비릿한 피 맛을 삼켰다. 잇몸에서 피가 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터벅, 터벅. 아버지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예전처럼 힘차지 않았다. 조금 지쳐 보였다. 아버지는 영영 모를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씹어 삼키며 당신의 뒤를 걷고 있는지.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게 한계에 다다랐을 때, 우리가 뱉어낼 것들이 얼마나 끔찍한 모양을 하고 있을지. 나는 등산로 옆에 쌓인 돌탑을 다시 한번 툭, 건드렸다. 와르르. 돌이 무너지는 소리가 산속의 정적을 깨고 울려 퍼졌다.

이전 16화뒤돌아보지 않는 등(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