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야, 내 팔자야

액막이신

by 윤선태

삶이 팍팍하다고요?

팔자가 사납다고요?

설마, 저보다는 덜하겠지요

가장 사나운 팔자로 살다 간 지장아기

제 얘기 들려줄 게 희망을 품으세요


늦둥이 외동딸로 태어나 사랑으로 자랐지만

제 나이 일곱에 조부모에 부모까지 잃고

외톨이가 되어 친척 집에 얹혀살며

팔자 사나워 제 부모 잡아먹은 년이라고

구박받다가 쫓겨나 한뎃잠으로 입에 풀칠했지요


힘들었어도 마음만은 곱고 착해

열여섯에 신랑 만나 잠시 행복을 누렸지만

정정하시던 시부모 시름시름 앓다 돌아가시고

믿었던 남편에 아기까지 제 곁을 떠나니

시누이 박대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왔네요


억세 엮은 움막에 누에치고 길쌈하며

친부모 시부모 남편 제사까지 모시다가

그것도 모자라 머리 깎고 출가하여

구걸 승으로 세상을 떠돌았지요


받은 시주는 천지신명께 올리며

고생고생하다 죽어 새가 되었지만

한 많은 이승 삶을 씻지 못해

내가 깃든 집에는 우환이 끊이지 않았지요


다행히 액막이 신으로 자리 잡아

지성으로 비는 집은 병과 액을 막아 주며

아직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답니다


삶이 팍팍하다고요?

팔자가 사납다고요?

저보다 못하다면 꾹 참고 이겨내세요

그 길밖에 없습니다



<주> 액막이신이란 드는 병과 액을 막아 주는 신이다. 지장아기는 이승에서 엄청나게 고생한 탓에 죽어서도 힘들어했다. 죽어 새가 되었지만, 이 새가 집에 들면 그 집에 액이 들어 사람들이 꺼렸다. 나중에 액막이신이 되어 지성으로 빌면 막아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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