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다

장승

by 윤선태

비바람 몰아쳐 속살을 적셔도

눈보라 휘날려 온몸을 얼려도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으로 우뚝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으로 우뚝

그 자리에 서 있다


치켜 올라간 부릅뜬 눈

주먹코에 귀밑까지 찢어진 입

어수룩하면서도 익살스럽게

무서운 듯하면서도 인자하게

그 자리에 덩그러니 서 있다


입가에 밀가루 듬뿍 발라놓고

국숫값 내라 해도 헤벌쭉

얼굴에 분가루 살짝 칠해놓고

분 값 내라 해도 헤발쪽

그 자리에 말없이 서 있다


잡귀를 쫓는 마을 지킴이로

사악함을 물리치는 액막이로

경계로, 이정표로, 거리의 신으로

누 천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다



<주> 장승은 통나무나 돌에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겨 세운 것이다. 마을 입구에 남녀가 쌍을 이루게 하여 세운다. 이정표 구실을 하거나,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대개 한 기둥에는 천하대장군, 또 한 기둥에는 지하여장군이라고 새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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