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공주
어린 바리데기
검푸른 강가 한 귀퉁이로
상자에 담겨 흘러온 위험이었는데
인자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
행복하게 살아온 날들이었습니다
새들은 푸른 하늘을 날고
시원한 바람 머릿결을 스치며 속삭입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니 희망을 품으라고
흐르는 강물을 바라봅니다
어디서 흘러와 어디로 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곳의 강물은 평화롭습니다
아무 일 없는 듯 잔물결만 살랑입니다
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일곱 번째도 역시 딸이므로
아무런 색깔도 없이 버려진 삶이기에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고 있습니다
나를 숨기며 지내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때
버려진 티가 나지 않도록
예쁘게 성장해 이름값 하겠습니다
길 떠나는 바리데기
떠난다
길 떠난다
약수를 찾아 길 떠난다
어려운 일임에 모두가 마다하니
남은 건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딸
힘들게 찾아 다시 만났지만 기쁨은 잠시
약수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인간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오랜 숙제이기에 누구나
미련을 못 버리고 작은 희망 품겠지만
유한한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좋은 약으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지만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그래도 구해 먹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
하여 길 떠난다
낳아준 부모님을 위해 길을 떠난다
만남의 기쁨도 잠시 미루고
자식임을 인정받기 위해 길을 떠난다
망자의 영혼 천도
이승에서의 삶이 끝난 망자여
부질없는 인연 거두고 저승으로
구름처럼 바람처럼 떠날 채비를 하자
나는 바리데기
슬픔과 두려움에 떨며
낯선 길을 가야 하는 네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겠다
저승은 산 넘고 물 건너 먼 길이 아니다
미련만 없다면 문지방 넘어가 그곳
그리움도 사랑도 내려놓으면
윤회의 길은 가까이에 열려 있다
이승에서 그대가 걸어온 길에
선명한 무지개가 있었다면
가슴에 묻은 슬픔조차 고운 꽃의 밑거름이 될지니
저승길은 언제나 즐거운 여행이다
두려워 마라
선과 악을 바탕으로 저승 시왕의 심판을 받고
그 결과에 따라 다시 태어나리니
두려워 마라, 망자여!
<주> 바리공주는 망자의 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이다. 지노귀굿 등에서 모시는 최고의 여신이다. 전국적으로 전승되며, 일명 바리데기, 오구풀이, 칠 공주, 무조전설이라고도 한다. 영혼을 위로하고 저승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베풀어지는 굿에서 구연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