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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노르망 Nov 12. 2023

산책하다 산 책

열네 번째 산책로  - 『라이팅 클럽』



열네 번째 산책로 - 『라이팅 클럽』 



 이 작고 귀여운 책은 출간된 지 6개월 이내의 책들을 진열해 둔 신간 서적 서가에 꽂혀 있었는데, 산뜻한 하늘색의 책 등에 새겨진 제목과 책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 뽑아 들었다. 책의 앞모습 역시 유쾌하고 정감이 넘쳤다. 옛날 책거리 그림을 연상시키는, 가지런한 책장 안을 차지한 갖가지 옛 물건들과 부대끼고 있는 책들의 모습. 그것은 오래 전의 기억들을 담고 있는 추억의 책장을 닮았다.





보통 표지가 나를 매혹하는 책들은 내용 면에서는 반비례인 경우가 흔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내게 필요했던 것이 책의 내용이나 메시지에 있다기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 그리고 무언가를 읽고 싶다는 의욕 자체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고른 『길 위의 철학자』가 가뜩이나 의욕을 자극하고 힘을 준 마당이었기에, 그다음에 고르는 책은 그저 다시 무언가를 읽고 싶고, 읽을 수 있다는 마음만을 유발시켜 줄, 가벼운 역할을 맡아도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이번에도 뜻밖의 보고를 낚은 셈이 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책은 『길 위의 철학자』가 나에게 선사해 준 시력 회복에 대한 희망에 뒤이어, 앞으로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자극한 동력이 되어 주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글을 쓴다는 일이 ‘치유’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주인공은 소위 ‘김 작가’라 불리는, 작은 글짓기 교실을 운영하는 작문 선생의 딸이다. 그녀의 어머니인 ‘김 작가’는 무슨 연유에선지 어린 딸을 오랜 기간 할머니의 손에 맡겨 두었다가, 그녀가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계동 부근에 자리를 잡고 딸과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주인공이 묘사하는 계동의 모습이 너무도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는 까닭에 나 역시 책을 읽는 내내 그 주변을 서성이는 느낌이다. 


모성애라는 게 부재한다 싶게 자신의 삶에만 충실한 ‘김 작가’를 어머니로 삼은 탓에 주인공은 사춘기 시절을 정처 없이 방황하지만, 유일한 유전자의 단서가 하필 ‘김 작가’인 탓일까. 주인공은 언젠가부터 독서와 글쓰기에 강한 매력을 느끼고 거기에 몰입한다.


『라이팅 클럽』에는 그야말로 내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주옥같은 작품들이 인용되고(그것도 직접 인용이다!) 나 역시 재미나게 읽었던 책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한 때 나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했던 철학자 시몬느 베이유의 『노동 일기』, 미국 시민이자 여성 운동가였던 에이드리언 리치의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그리고 잭 런던의 『강철 군화』,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 그리고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독서와 글쓰기를 놓지 않게 주인공을 북돋워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이 이 책 속의 책들로 등장한다. 


더불어 유독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빠질 법한 과오마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이를테면 특히나 나의 뼈를 때리는 듯했던 이런 문단.  



“만약 그날 B가 책을 읽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 책은 많은 것을 감춰 주기도 한다. 사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 책을 읽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걸 좋게 판단했다. 설사 말실수를 하더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책을 읽고 있단 장면 하나로 모든 걸 덮어 버렸다. 머릿속에 각인된 상대방의 첫 번째 이미지 속으로 쏙 들어가 숨어버리는 것이다. (...)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오해이거나 착각이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책 때문에 우그러졌다. 그 결정적 증거가 B였다.”



연애의 실패를 경험한 주인공은 결혼을 결심하고 중매로 만난 남자와 미국으로 향한다. 이때 주인공이 들고 간 유일한 책 한 권이 바로 『돈키호테』이다. 결혼 생활이 파국을 맞으면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한 네일 숍에서 일하게 된 그녀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던 글쓰기에 대한 열망으로 ‘라이팅 클럽’을 개장한다. 각각의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클럽의 회원이 되기 위해 모여든다. 하지만 머지않아 한국으로부터 ‘김 작가’가 병들어 시설에 수용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김 작가’의 측두엽에 종양이 생겼다는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귀국한 주인공은 시설 내에서 ‘김 작가’를 돌보기 시작하는데, 어머니의 치유를 돕기 위해 허구를 가미한 환상 - 그녀가 뉴욕에 있는 고급 요양 시설에 있다는 –을 심는가 하면, 네일 숍에서 배운 기술을 활용해 손톱을 다듬어 주고, 『돈키호테』를 읽어주기도 한다. 그간의 삶 속에서 두 모녀가 온전히 밀착된 시간을 보내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시간 동안 망상에 빠져있던 ‘김 작가’는 마치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듯, 미친 듯이 글을 쓴다. 간헐적 발작과 쇼크에도 불구하고 흰 종이에 힘차게 무언가를 계속 써 대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정상적인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기적처럼 치유가 이루어진 것이다. ‘김 작가’를 치료하던 의사와 주인공 모두 그녀의 상태가 어떻게 해서 좋아진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주인공의 다음 대사가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미쳤던 사람이 멀쩡한 정신으로 돌아오면 죽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돈키호테도 미쳤고 김 작가도 미쳤지만 김 작가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김 작가는 너무나 글이 쓰고 싶어서 죽을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어느 면으로 보나 김 작가는 나보다 한 수 위였다. 내가 미국으로 갈 때 김 작가가 나에게 편지를 줬다. 그 편지가 내 인생에 큰 힘을 주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내게는 『라이팅 클럽』이라는 이 책이, 김 작가가 주인공에게 건넸던 편지와도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이 책이 내 인생에, 특히 시력으로 인한 좌절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인정하고 또다시 인정한다. 


책의 말미에서 주인공과 김 작가가 다시금 계동에 정착하는 계절은 겨울이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직후도 겨울이었다. 그 겨울에 나는 직접 계동을 방문했다. 주인공이 서성였던 길들을 그대로 걸어봤다. 정독 도서관, 북촌 길, 창덕궁 길, 삼청동 길을 걸어 옛 프랑스 문화원이 있던 자리. 신입생 시절,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생판 알아듣지도 못하는 프랑스 영화를 관람하러 들르곤 했던 옛 프랑스 문화원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 공간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머릿속에 생생하게 자리한다. 


계동을 거닐며 나만의 옛 추억들과 대면하던 중, 불현듯 시력이 좋지 않아 쓰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기로 결심했다. 시력의 기능과는 상관없다. 어쩌면 ‘김 작가’처럼, 쓰다 보면 시력도 저절로 나아지지 않을까? 갑자기 나빠졌다면, 반대로 갑자기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라이팅 클럽』이 줄곧 영화 <파이팅 클럽>과 혼동되었던 이유도 그게 아니었을까? 어감의 유사성을 넘어서,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곧 ‘인생을 향한 파이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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