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Aug 22. 2023

여행초보가족 미국여행기 3탄

3. 여행하기 좋은 나이는 없다

이제 여행기를 거의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멕시코에서 시작된 여행이 막바지로 향해갈수록 시간이 흘러가는 아쉬움보다 하루를 더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짧은 여행이었다면 하루하루 아쉬웠겠지만 날짜도 길었거니와 15일이 넘는 시간 동안 가족들과 찰싹 붙어서 하루 24시간을 함께 해야 했으니 힘든 것도 있었다.

태풍이 지나간 후 우리 집은 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솔직히 계속 사진 찍고 외식하는 것도 슬슬 지겨워졌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긴 여행보단 짧은 여행을 가는 것이 더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쓰니 짧은 여행만 간 것 같지만 사실 의외로 무모했던 시절도 있었다.


24살 때 임용고시 떨어져서 혼자 제주도 올레길 탐방을 여름 2주 정도 간 일도 있었고(목포에서 배 타고 갔었는데 조용히 여행 준비하고 목포에 가서 엄마한테 전화로 통보했음)

2010년 내일로 여행 - 보성 녹차밭

25살 때는 내일로 기차를 타고 혼자서 전주-담양-화순-보성-순천-부산-서울-영월-정동진까지 갔던 경험도 있다. 가장 긴 여행은 대학교 2학년 때 고등학교 동창과 한 달간 인도 여행이다. 뉴델리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인도 여러 도시를 여행했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이라 구체적인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릭샤를 타고 시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일, 우다이푸르에서 비가 많이 온 날 호수 위에 떠 있는 성을 오래도록 본 일, 리시케시에서 요가했던 일 어떤 언니와 만났던 일,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가 있다는 절 근처에서 산책하고 폭포에도 갔던 일 21살의 장면들이 문득 떠오른다. 그런 긴 여행을 했던 지금보다 더 젊은 시절엔 돈도 없고 지금처럼 스마트폰도 없어 20리터짜리 배낭 하나와 두꺼운 여행책자를 옆구리에 끼고 돌아다녔다.

내가 그랬었지 벌써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그런 여행도 할 만큼 내 안에 용감하거나 또는 천진난만했던 여행자의 자질도 있었다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랬던 시절이 지나 이제는 9명 대가족과 함께 여행하며 돈 걱정보단 체력 걱정, 건강 걱정, 애들 걱정, 집안 걱정을 하는 때가 되었으니 나이 듦은 여행에서도 나타나는가 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디즈니랜드에 가고 사라졌다.

미국 3일 차엔 할리우드 기념품 가게*라라랜드에서 기념품 쇼핑을 간단히 하고 디즈니랜드가 있는 애너하임으로 갔다. 디즈니랜드 입구와 가까운 숙소에 가볍게 짐을 풀고 걸어서 디즈니랜드 다운타운에 들어갔다. 금요일 한낮인데도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소지품 검사를 받은 후 조금 들어가면 오른쪽은 디즈니랜드 파크, 왼쪽은 캘리포니아 어드벤처가 있는데 디즈니랜드는 다음날 하루종일 돌아다닐 예정이었으므로 다운타운으로 갔다.

각종 기념품 가게, 화장품 매장, 레고, 카페, 식당으로 즐비한 이 거리엔 온동 미키마우스다. 평소 미키마우스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는 우리 아이들은 머리띠, 가방, 모자, 옷 등을 사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는데 관광객 대부분은 가족 단위로 돌아다니면서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티셔츠를 똑같이 맞춰 입고, 앙증맞은 백팩을 모두 했다. 그리고! 미키마우스 머리띠는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여성분들까지 모두 하는 아이템이었다.

나는 머리에 뭘 거추장스럽게 달고 다니는 것을 싫어하고 특히 딸은 머리띠는 관심이 있었지만 엄청나게 무거운 머리띠를 할 자신이 없었는지 사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기념으로 하나 살 법도 하지만 기념으로 사기엔 가격이 너무 사악하다! 리본 머리띠 하나에 36달러 이상이었는데 택스 포함하면 5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그런 머리띠보단 어떤 캐릭터 소품 가게에서는 화가가 직접 디즈니 만화 캐릭터가 들어간 그림을 그려서 표구한 액자를 팔고 있었는데 그런 그림들이 훨씬 소장욕구를 자극했다.

설립된 지 올해 100주년이 되어서 그런지 관련한 각종 기념품과 구조물들도 많아서 걸어 다니기만 해도 만화 속 세상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디즈니랜드는 나이가 사라지고 추억이 살아나는 곳이다.

그곳에 들어가면 그 시절 좋아했던, 만화 캐릭터를 사랑했던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


본격적인 디즈니랜드 탐방을 앞둔 저녁! 비장한 마음으로 감자탕을 들이켜고 일찍 잠들었다. 8시에 개장하는 캘리포니아 어드벤처에 가려면 숙면이 필수였다.

보통 2일권을 끊어서 하루는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하루는 디즈니랜드 파크에 간다는데 그럴 시간이 없는 우리는 하루 안에 모든 곳을 다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에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섰다. 그런데 그런 비장한 각오는 우리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는데 디즈니랜드로 향하는 인도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검색대에 선 줄이 엄청 길었지만 금방 줄어들었고 계획한 대로 캘리포니아부터 들어갔다.

디즈니랜드는 어플을 깔면 지도가 보이고 놀이기구 당 대기 시간이 보인다. 예약을 해야 하는 어트랙션들이 꽤 있어서 동생은 열심히 예약을 하고 우리를 데리고 갔다.


디즈니에서 제작한 영화 스타워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파이더맨은 팬층이 넓고 탄탄한 영화라서 그런지 어트랙션도 매우 인기가 많았다. 먼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갔다. 나는 영화를 안 봤지만 거기 나오는 여러 캐릭터들은 유튜브나 방송에서 여러 번 봐서 익숙했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놀이기구 내부에 들어가고 줄을 따라 이동하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몇 명씩 나눠서 네모 안에 들어가고 그 사람들이 같이 어떤 공간 안에 들어가고 안전띠를 맬 때 까지도 이게 뭐지? 싶었는데...


아뿔싸! 조금 짧은 자이로드롭 같은 놀이기구였다.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면서 무중력을 체험하는 극도의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놀이기구였다. 내 옆에 탄 우리 아버지는 아이 구를 연발하시고, 우리 딸과 아들은 심장이 멈출 것 같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옆에 돌아볼 정신도 없어서 그저 내 한 몸 살자고 안전띠 옆에 있는 노란 손잡이만 꼭 잡고 비명 지르느라 바빴다. 처음 탄 놀이기구가 그렇게 무섭다니 반칙이었다.


왜 놀이기구는 무섭게만 만들지 그냥 재미있게 만들어도 좋을 텐데!

하던 참에 갔던 어트랙션은 스파이던 맨 웹슬링이었다. 3D안경을 쓰고 스파이더맨처럼 손동작을 하고 화면에 나오는 거미를 맞추면 되는 것인데 무섭지도 않고 재미있었다. 중간중간 점수도 나와서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은근 경쟁도 되는 게임이라 무섭지 않고 딱 좋은 놀이기구였다.

그 밖에도 인사이드아웃, 몬스터 주식회사 등 우리 아이들이랑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 관련 놀이기구도 재미있게 즐겼다. 문제는 갈수록 올라가는 기온과 더 뜨거워지는 햇빛이었다.

토요일 정오를 지날 때부터는 사람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놀이기구당 대기 시간도 너무 길어서 진이 빠졌다. 아이들은 시원한 곳과 시원한 먹을 것을 계속 찾고 어른들은 뜨거운 햇빛을 피해 그저 앉아 있고 싶었다.

디즈니랜드에서는 식사보다 아이스크림, 추러스, 나초 같은 간식거리를 중간중간 먹으면서 요기를 했다.

2시쯤 디즈니랜드파크로 넘어가서 이젠 좀 쉬고 싶어 기차를 타고 한 바퀴 돌았다. 개인적으로 인디아나 존스 어트랙션이 궁금했는데 키 제한도 있고 라이트닝(빨리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안 돼서 기본 대기 시간이 한 시간이 넘어 9명 모두 기다리는 것은 무리였다.

기차 타고 돌아다니다가 마침 시간이 라이언킹 공연이 있어서 대공연장에서 노래와 이야기 들으면서 쉴 수 있었다. 1인당 입장권 가격이 너무너무 사악했지만 그 가격 아깝다고 마구 놀이기구를 탈 수도 없었고 좀 쉬면서 여유 있게 다니자니 많이 탈 수는 없었지만(또 무서워서 타지도 엄두도 안 났지만) 이런 공연과 저녁에 본 퍼레이드, 불꽃놀이까지 하루를 정말 알차게 보냈다.

이날 걸음수가 25000보가 넘었는데 우리처럼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불꽃놀이 끝난 후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아침 8시에 들어가거 10시 넘어서 나오는 스케줄에 아이들, 어른들 모두 체력이 방전되어 집에 오자마자 씻고 잠이 들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으면서 바깥을 보니 또 그 시각이 되니 캐릭터 옷, 가방, 머리띠를 한 사람들이 디즈니랜드로 엄청나게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 나도 같이 따라가고 싶었다는 것이다...


흔히들 여행에 때가 있다고 말한다.

속된 말로 다 늙어서 여행하려면 아파서 못 돌아다니니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여행 많이 하자는 이야기

그 말이 디즈니랜드에선 통하지 않았다.

물론 놀이공원이라 젊은 사람들, 어린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돌아다니는 가족들, 우리처럼 아이 동반한 대가족들도 많았지만 어쩐지 내 눈에 많이 들어온 사람들은 분명 나이가 좀 지긋해 보이는 남편과 아내가 돌아다니면서 놀이공원을 누비는 모습이었다.

미국인들도 디즈니랜드에 오는 것이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라고 하더니 이곳에서는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 같다. 한국에선 놀이공원이 젊음의 공간이라면 디즈니랜드는 추억의 공간인 건가?


어릴 때 여행 많이 해라!

이런 말도 참 많이 들었지만 그땐 돈이 없었다.

아기 없을 때 여행 많이 해라!

결혼하고 그 말도 많이 들었지만 아기가 있어도 여행하고 싶어서 아기띠 메고, 유모차 끌고 많이 다녔다. 우리 애들은 자기들이 괌이나 제주도 간 거 기억 거의 못한다.

걸어다닐 수 있을 때 여행 많이 해라!

이런 말도 많이 들었지만 여행하기 딱 좋은 나이가 어디 있을까?

우리 가족 중 여행 제일 재밌게 한 사람은 70세인 우리 아버지였다.

여행 내내 아프시지도 않고, 끼니때마다 맥주 2잔씩 꼭 하시고, 밥도 가리지 않고 제일 맛나게 드셨다.

핸드폰도 여행 몇 주 전에 바꾸셔서 제일 화질 좋고 멋진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매일 전송해 주시고

다리 아프실 만도 한데 뒤쳐지는 법 없이 제일 열심히 돌아다시는 것 보면 그 말도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결론은 여행하기 딱 좋은 나이는 없다! 끝!

작가의 이전글 여행초보가족 미국 여행기 2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